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선 후보의 부동산 공약을 이렇게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10대 공약에는 부동산 공약이 전면에 내걸리지 않았다. 그 대신 각론에 주택 공급 확대, 청년 주거 지원, 광역교통 대책 등을 넣었다. 후보마다 수식어는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이었다. 부동산 전문가의 눈엔 무색무취 공약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두 후보는 모두 주택 공급 확대를 약속했다. 매년 노후 주택 10만여 채가 사라지는 만큼 공급 확대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중요한 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이며 대선 공약이라면 적어도 핵심 공급 대상과 규모, 방식은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양당 후보의 공약에는 이런 알맹이가 빠져 있다. 부동산 이슈로 치열하게 맞붙은 과거 대선과 비교하면 맥 빠진 공약이다.
시장에서 논란이 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달라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재초환은 개발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을 넘으면 이익의 최대 절반을 부담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이 후보 측은 일단 시행해보자는 입장이고 김 후보는 재초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급 확대를 약속하면서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재초환을 일단 시행해 보자는 이 후보 측 입장이나,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을 개정해 재초환을 폐지하겠다는 김 후보의 공약 모두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시장에서는 두 후보의 맹탕 부동산 공약이 의도된 선거 전략이라고 의심한다. 괜히 부동산 얘기를 꺼냈다간 정치적으로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어 최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경제 분야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두 후보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부동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맹탕 공약과 달리 현실에는 부동산 난제들이 쌓여 있다. 공시가격 산정 논란부터 매듭지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도입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지 않아 국토교통부는 현실화 목표를 억지로 낮춰 공시가를 매기고 있다. 법과 행정이 따로 노는 비정상적 상황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대차법 개편 논의도 마무리해야 한다. 국민 10명 중 4명은 세입자다. 집주인까지 더하면 적어도 국민 절반이 직접 영향을 받는 법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대차법을 폐지하거나 수정하자는 주장과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되풀이되는 시장 혼란은 막아야 한다. 2, 3년 뒤 주택 공급량을 결정하는 인허가 실적은 2023, 2024년 2년 연속 43만 채를 넘지 못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최저치다.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담금 폭탄 특별법까지 만든 1기 신도시 정비사업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그간 회피한 부동산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맹탕 공약으로 선거는 치를 수 있어도 차기 정부의 민생 정책 성적표가 나올 진실의 순간까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김호경 산업2부 차장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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