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의 루프 파트를 제조하는 프레스 공정에 적용해 전력 사용량을 줄였습니다. 프레스 1기당 연 600만 원의 비용이 줄어드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29일 경북 경산시의 경일대 종합체육관. 전날 개막한 ‘제2회 실리(SILI) 경진대회’ 행사장 곳곳에서 제조업 현장의 에너지 절감 사례가 소개됐다.
대구·경북 지역의 대표적인 자동차 부품사인 아진산업과 경일대가 함께 주최한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지속가능한 창의, 함께 만드는 미래’.
특히, 간단한 아이디어를 통한 비용 개선이라는 의미의 ‘실리(SILI, Simple Idea Low-cost Improvement)’를 지향점으로 설정하고 이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에 접목하기로 하면서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활용한 제조 기술 개선 사례가 선을 보였다.프레스 공정에서의 전기 사용 절감 아이디어는 아진산업 프레스반이 이미 현장에 적용 중인 기술이다.
최대 1000t의 누르는 힘을 내는 프레스 기기에 간단한 기계 장치를 추가로 연결해 수평 운동 에너지를 덤으로 얻고 이 에너지를 프레스 공정 이후에 발생하는 ‘스크랩(자투리 금속)’ 자동 배출과 컨베이어 벨트 가동에 쓰는 것이다.
기존에는 모두 추가 전력 소모가 필요했던 작업을 ‘에너지 소모 제로’로 바꾼 셈이다.아진산업 관계자는 “진동과 소음이 큰 에어 바이브레이터를 수시로 가동하면서 스크랩을 분리 배출해야 했는데 이같은 작업과 전력 소모를 모두 없앴다”며 “반년가량 프레스 1기에 활용한 성과를 바탕으로 다른 프레스 기기에 대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아진USA를 비롯해 5곳의 계열사가 공장별, 부서별로 다수의 작품을 출품한 아진산업은 추와 도르래, 지렛대, 레일, 바퀴 등을 이용해 전력을 쓰지 않으면서도 중량물을 손쉽게 운반, 적재, 회전할 수 있는 현장 기술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완전 자동화 설비에 비해 초기 도입 비용은 훨씬 낮으면서도 제조 현장의 다양한 필요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아진산업 구어공장의 경우 현대차의 베스트셀링 대형 SUV ‘팰리세이드’의 3열 프레임 부품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을 내놓았다.
일정한 크기의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중량물을 공중에 띄우듯이 가볍게 들 수 있게 해주는 ‘스프링 밸런스’를 활용해 근로자의 근력 사용은 최소화하면서 대형 금속 제조물을 운반할 수 있는 기술이다.
구어공장 관계자는 “제조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허리를 굽히거나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들면서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며 “제조품 중량에 따라 서로 다른 스프링 밸런스를 활용하면서 여러 공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난달 말 접수를 마감한 이번 대회 예선에는 총 137건의 기술이 몰려들었다. 첫해에는 아진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행사가 올해 확대되면서 다른 기업들도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아진산업 계열사 외에도 8곳의 기업이 예선을 통과하면서 총 31개의 부스가 마련된 이번 경진대회에서는 국내외 전문가와 현장 참가자 투표로 본선 심사가 진행됐다.
이날 폐막식에서 상생협력상을 수상한 동호정밀은 자석을 활용해 철강 코일을 쓰는 제조업 현장의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로 큰 관심을 모았다.
얇은 철강 판재가 둥글게 말려 있는 철강 코일은 처음 납품받을 때는 단단하게 묶여 있다.
하지만 결속을 푼 다음에 코일을 일부만 사용하게 되면 남은 코일의 날카로운 끝단이 현장의 큰 위험 요소가 되는데 자석과 고정장치를 이용해 코일 끝단을 손쉽게 밀착시켰다가 풀어낼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동호정밀 관계자는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문제여서 경영진에서도 자석을 활용한 개선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선뜻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경진대회를 계기로 실제 적용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동신산업도 근로자가 근력만으로 부품을 삽입하던 작업에 발판과 지렛대를 덧붙여서 작업 부담을 크게 줄인 기술로 이날 상생협력상을 받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친환경 대전환의 중심에 놓여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 생산 과정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앞서 올 4월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과 함께 ‘2025 자동차부품산업 환경 ESG·탄소중립 박람회’를 처음으로 연 바 있다. ESG와 탄소중립이라는 도전적인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앞장서서 부품업계의 친환경 전환을 이끄는 가운데 아진산업을 비롯한 주요 협력업체에서도 ‘바텀업’ 방식의 친환경 전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은 차를 조립하는 완성차 공장 단계 못지않게 그 앞단의 부품과 모듈 생산 과정의 비중과 역할이 큰 산업”이라며 “밸류체인을 이루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자동차 생산의 친환경 혁신과 생산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뜻깊은 행사”라고 말했다.
원래는 일본의 전통 기계인형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저비용 자동화 기법의 대명사로 통하는 ‘카라쿠리’를 일본에서 접하고 ‘실리’ 활동에 나선 서중호 아진산업 대표는 내년에도 경진대회의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다.
누구나 참석, 관람할 수 있는 대회로 개별 기업의 친환경, 비용 절감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독점을 통한 기업 이익 확대’보다는 ‘공유를 통한 산업 전체 발전’에 힘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서중호 대표는 “제조업의 공정 개선은 결국 책상 앞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고민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며 “실리 경진대회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발굴하고 다른 기업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경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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