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가격 못 받아도 상관없다”...손해봐도 부동산 판다는 시중은행들, 왜?

1 day ag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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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과 금융지주가 대대적 부동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비롯한 건전성 지표 개선을 위해서 현금 확보에 나서는 것이다. 부동산 시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부동산을 현금화할 경우 건전성 비율을 더 크게 올릴 수 있다.

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보험사도 상당수가 자본비율이 한 분기 새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며 하반기 금융권의 주요 과제는 자본 확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통폐합한 점포 13곳에 대한 매각 계획을 공고했다. 총매각 규모는 최저 입찰금액을 기준으로 총 1335억원에 달한다. 국민은행은 유휴 부동산을 정리해서 자본비율을 개선하고 매각대금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을 정리하는 건 우리금융그룹도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은 최근 서울 명동 디지털타워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이 건물은 2019년 매입 당시 2092억원에 달했으며 최근 주변 매매 동향을 고려했을 때 가치가 40% 안팎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금융당국으로부터 동양·ABL생명의 조건부 인수를 승인받으며 부동산 자산의 매각을 통한 자본비율 제고를 약속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안성 연수원과 공실 지점 15곳을 매각하면 우리금융은 중장기적으로 45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현금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도 유휴 부동산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신한은행은 서울 망우동 지점을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처분한다. 기업은행은 경기 성남IT지점과 용인 수지지점 등 총 110억원 규모의 공실 부동산을 처분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지금이 유휴 부동산 처분을 통해 좋은 가격을 받기엔 유리하지 않은 시기라고 본다. 상업용 부동산을 비롯해서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 나 할 것 없이 부동산 매각에 나서는 건 보통주자본 비율을 올리기 위해서다.

보통주자본 비율은 금융사가 보통주와 이익잉여금 등 손실흡수능력이 높은 자본을 얼마나 보유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보통주자본의 합을 위험가중자산(RWA)의 합으로 나누면 이 비율을 산출할 수 있다. 동일한 금액이라도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항목을 줄이면 위험가중자산이나 보통주자본 비율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본으로 분류된다. 한 시중은행의 리스크관리 부행장은 “부동산은 위험가중치가 100%라 평가액이 그대로 위험가중자산으로 반영된다”며 “부동산을 매각해서 위험가중치가 0%인 현금을 확보하면 보통주자본 비율 개선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 기준으로는 보통주자본 비율이 규제 기준인 9%보다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주요 은행과 금융지주는 연말 금융당국이 스트레스완충자본을 도입해 규제선을 11.5%까지 높일 것을 대비하고 있다. 까딱하다간 제재 대상이 된다는 위기감에 선제적으로 부동산부터 내다 팔고 있는 것이다. 보통주자본을 다소 과할 정도로 쌓아두는 게 안전하다는 공감대도 퍼지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금융그룹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상황인데 모두 보통주자본 비율을 맞추느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유휴 부동산 매각을 통해 이 비율을 안전선까지 높이면 투자에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자본비율에 비상이 걸린 건 은행권만은 아니다. 보험사는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을 맞추느라 분주하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안정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자본의 양을 수치화한 것이다. 올 1분기 기준 국내 주요 손보사의 지급여력은 작년 동기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과조치 전 기준으로 롯데손해보험은 146.4%에서 101.6%로 낮아졌다. KDB생명은 44.5%에서 40.6%로, MG손해보험은 42.7%에서 -15.3%로 낮아졌다. 이들 외에도 많은 보험사들이 경과조치 후에도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에 미달했다. 이에 하반기엔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지급여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대형 보험사들 역시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졌다. 일부 보험사들의 경우엔 150%대 수준까지 떨어진 곳도 나왔다. 일례로 한화생명은 1분기에 154.1%로 낮아지면서 최근 최대 10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밝힌 바 있다. 자금 조달을 통해 지급여력비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당초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던 지급여력비율 130%를 이달부터 적용한다. 다만 일부 보험사들의 경우엔 낮아진 기준마저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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