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 지켜낸 그녀들…50년의 세월 동안 이어진 약자와의 동행

1 day ag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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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금천구 시흥동 판자촌은 의료시설이 부족해 많은 이들이 아픔 속에서 고통받았고, 이 과정에서 ‘의료사회복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75년 설립된 ‘전진상 공동체’는 저소득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력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전진상의원·복지관은 포니정 혁신상을 수상했으며,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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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포니정 혁신상’ 받는 전진상의원·복지관

서울 금천동서 반세기 의료복지
벨기에 출신 의사 배현정 씨 등
설립부터 함께한 멤버 4인 수상

죽을 고비 아이들 잘 자라 감사
구성원 고령화는 새 걱정거리
약자 돕는 정신 사라지지 않기를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1970년대 서울 금천구 시흥동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으로, 약 4만명의 사람이 제대로 된 식수조차 공급받기 힘든 곳이었다. 병치레가 잦을 수밖에 없는 조건에 의료시설도 전무하다 보니 늘 아픔과 슬픔이 교차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열악한 지역 환경은 ‘의료사회복지’라는 인류애를 싹틔웠다. 전쟁통 때보다 힘든 현실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1975년 ‘전진상 공동체’라는 씨앗이 심긴 것이다.

파란 눈의 의사 배현정 원장(79·마리 헬렌 브라쇠르)은 지난달 30일 매일경제와 만나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부르기보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원동력이 됐다”며 “구성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넘나들며 협업한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픈 환자들을 마주하며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환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기뻤던 순간도 많았다”고 말했다.

최근 제19회 포니정 혁신상에 전진상의원·복지관이 선정됐다. 이곳은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벨기에 출신으로 훗날 중앙대에서 의사 면허를 받는 배 원장과 최소희 약사(87), 유송자 사회복지사(81)가 먼저 뭉쳤다. 김영자 간호사(85)는 해외 연수를 마치고 3년 뒤 합류했다.

초기 활동의 구심점은 약국이었다. ‘의약분업’ 이전에 약국은 돈 없는 환자들이 가장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장소였다. 김 추기경이 발 벗고 나서 후원금을 모은 덕택에 지금의 전진상의원·복지관 터에 약국이 들어섰다. 이들은 신자가 아닌 주민들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찾아올 수 있도록 약국 이름을 ‘전진상’으로 지었다. AFI의 영성인 ‘온전한 자아 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에서 따온 글자다.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이들의 하루 일과는 산동네를 오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최 약사를 중심으로 약국에서 몸이 아파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응하는 동안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의사가 조를 짜 산동네 판자촌에 방치된 환자들을 찾았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알코올중독자나 조현병 환자들의 난동에 위협을 당한 적도 많았다.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환자들의 시신도 하루가 멀다 하고 목격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마음을 아리게 한 건 어린아이들의 참담한 몰골이었다. 판자촌 지하 하수구 밑에서 발견된 여덟 살 소년의 주검은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보여줬다. 가장의 가정폭력으로 엄동설한에 방치돼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갓난아이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아기를 안고 큰 병원으로 달려가 기적처럼 살려냈지만 이후 소식을 몰라 속을 썩였던 기억은 지금도 악몽처럼 생생하다.

배 원장은 “훗날 한 아줌마가 큰 대야에 예쁜 그릇 세트를 들고 약국에 나타났다”며 “알고 보니 그 아기의 엄마였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몇 달간 돈 버는 데 매진하다 연락이 끊겼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최 약사는 “가정환경이 어려워 다방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의 모습에서도 깨달음을 얻었다”며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지 느꼈던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전진상의원·복지관은 1975년부터 지난 50년간 취약계층의 건강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자 간호사, 최소희 약사, 유송자 사회복지사, 배현정 의사. [이승환기자]

공동체와 함께 성장해 나간 아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보상이다. 네 살 때 양잿물을 마셔 식도가 다 타버렸는데 전진상의원·복지관을 만나 야윈 몸을 회복하며 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폐에 고름이 차 장기들이 밀려나 심장마저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던 소녀는 죽기 직전 배 원장의 헌신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기도 했다.

배 원장은 “식도가 다 탔던 아이는 어버이날마다 직접 농사지은 과일과 달걀, 그리고 전진상 식구들에게 달아줄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온다”며 “폐병을 앓았던 소녀는 완치돼 가정을 꾸리고 친자녀뿐 아니라 입양한 아이도 키우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같은 경험이 쌓이면서 이곳은 체계화된 통합 복지를 위한 ‘가계도’를 구축하고 있다. 기관을 처음 찾으면 우선 상담실에서 사회복지사와 만나 가족 사항부터 재정 능력까지 3대에 걸친 가족 구성원들의 발자취를 공유한다. 가족력 등 발병 원인의 종합적인 분석은 물론 돈이 없어 진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장학금 지급 같은 후원도 이뤄진다.

전진상의원·복지관은 호스피스 기관으로도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유 복지사는 “국가가 만든 사회보장 시스템 안에서 과거보다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가정폭력에 취약한 다문화가정을 비롯해 새로운 형태의 약자가 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진상의원은 그동안 서울 대형병원에서도 의사 2명을 파견해 환자들을 돌봤지만, 최근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이 같은 활동이 어려워진 상태다. 또 구성원들의 고령화로 개인의 헌신을 통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고민도 커지고 있다. 김 간호사는 다만 “지금처럼 공동체 생활 형태로 활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걸 안다”며 “다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정신만큼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포니정 혁신상은 현대자동차의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의 애칭인 ‘PONY 鄭(포니정)’에서 이름을 따 2006년 제정된 상이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아이파크타워 1층 포니정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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