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음식은 보약이지.” “제철 음식은 살 안 쪄.”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진 일부가 새조개 샤브샤브를 먹는 영상이 나오자 지켜보던 다른 출연진들이 한마디씩 얹었다. 세 사람은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양의 새조개를 연신 흡입했다. 초가공식품과 배달 음식에 지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동원된 제철 새조개와 제철 미나리. 맛있겠다, 군침을 삼키다가 멈칫했다. 내 기억 속의 제철 음식과는 어딘지 다르게 느껴져서다. 언제부터인가 제철 음식은 ‘계절이 바뀌면 꼭 맛봐야 할 트렌디한 음식’으로 의미가 변한 듯하다.
어릴 적, 봄볕이 본격적으로 느껴질 무렵이면 쑥이며 냉이며 달래 같은 봄나물들이 밥상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데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봄나물의 강렬한 향과 풋내를 머금은 맛이 내게는 제철 음식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계절의 자연을 고스란히 품었다가 우리 몸에 그대로 전해주는,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아무 때나 먹을 수는 없던 음식.
그런 의미의 제철 음식을 추억하게 해주는 책이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미즈카미 쓰토무의 에세이 <흙을 먹는 나날>이다. 베스트셀러 요리 만화 <맛의 달인>에서 주인공 야마오카 지로가 “지금 읽을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음식 책”이라고 극찬해 유명해졌다. 미즈카미 쓰토무는 가난으로 인해 어릴 때 출가해 10대 후반까지 절에서 생활하며 주지스님의 시중을 드는 전좌 역할을 했고, 스님의 식사를 챙기면서 정진 요리, 즉 사찰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절밥이 화려할 리 없고 가난한 절에는 더더욱 식재료가 부족하니 없는 재료를 ‘쥐어짜듯’ 찾아내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자연히 밭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차림이 달라질 수밖에. 그 제약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요즘처럼 가게에 가면 뭐든지 다 있는 시대와는 달라서 밭과 의논해서 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정진 요리란 ‘흙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제철 재료를 먹는다는 것은 곧 그 계절의 흙을 먹는 것일 터이다.”흙을 먹는 일이기에 재료를 손질할 때도 껍질을 최소한만 걷어내고, 이파리부터 뿌리 끝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먹는 것, 재료가 지닌 본연의 맛에 집중하며 다채로움을 궁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먹는 계절 음식이 아닐지.
이제는 1월만 되어도 흙이 모두 제거된 채 깔끔히 손질되어 포장된 봄나물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시절이지만, 제철이 아니어도 계절의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사람들은 어쩐지 예전보다 더 제철 음식에 집착하는 것 같다. “우리는 풍요롭지만 강이 오염되고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메마른 계절”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최윤경 어크로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