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네버 스킬링’

10 hours ago 3

과거 대기업 공채로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이 수습을 마치고 ‘1인분’ 몫을 해내기까지는 통상 2년 안팎이 걸렸다고 한다. 선배 사원을 보조하며 어깨너머로 ‘일머리’를 배우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일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보조 업무를 대신하고 채용 시장이 경력직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역량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네버 스킬링(Never Skilling)’ 세대가 늘어나는 추세다.

▷동아일보가 직원 1000명 이상 정보기술(IT) 기업 11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지난해 채용한 20대 신입사원은 총 1387명으로 2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자료 조사, 코딩, 시안 제작 등 신입사원이 주로 맡던 업무를 AI가 대체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획·개발·운영 등 전 과정에 AI를 도입한 게임 회사에선 과거 100명이 3년 동안 만들던 게임을 이제 33명이 1년 반 만에 제작하는 사례가 나올 만큼 효율성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인력 구성도 전체 업무 흐름을 파악하고 기여할 수 있는 숙련자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것이다.

▷AI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IT 일자리와 전문직까지 대체한다는 점에서 채용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크다. 장부 정리와 재무제표 초안 작성 등 신입 회계사가 도맡던 일을 AI가 순식간에 처리하게 되면서, 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 자리를 구하지 못한 회계사가 3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판례·법령 검색 등 보조 변호사의 업무도 AI로 넘어갔다. 이제 베테랑 변호사 한 명이 과거 팀 단위로 처리하던 업무를 혼자 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신입 변호사의 취업 문턱은 높아졌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입문용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스탠퍼드대 AI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미국의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20% 줄어든 반면 3040 개발자 고용은 오히려 10∼15% 늘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퍼듀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했는데 면접 볼 곳이 치폴레(멕시코 식당 프랜차이즈) 한 곳뿐이었다”는 청년의 한탄을 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효율성만 따지면 “신입 한 명을 뽑느니 AI 에이전트 10개를 돌리는 게 낫다”는 말이 맞을 수 있다. 다만 신입이 할 일을 모두 자동화하다 보면 숙련자를 길러낼 통로 역시 사라진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글로벌 회계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 2월 “주니어 인력이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반복 업무 가운데 일부는 AI에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회사를 이끌 인재를 키우겠다는 판단일 것이다. 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 세대가 경력을 쌓을 사다리를 지켜 주는 것은 기업과 사회에 먼저 자리 잡은 선배 세대의 책무 중 하나다.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횡설수설

  • 데이터 비키니

    데이터 비키니

  • 전문의 칼럼

    전문의 칼럼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