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용]정부-투자자-노조에 포위된 ‘황금알 낳는 거위들’

10 hours ago 5

반도체 호황에 ‘가진 자’ ‘더 가지려는 자’ 갈등
정부 주도 토론회서 ‘초과이익’ 분배 논의까지
노조와 투자자, 노봉법-개정 상법 내세워 압박
경영 판단 원칙 세워 ‘피크 반도체’ 대비해야

박용 논설위원

박용 논설위원
요즘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40% 이상을 해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는다. 학원가에선 ‘의치약한수’(의대·치대·약대·한의대·수의대)에 이어 반도체 학과를 포함한 ‘의치약한수반’이 인기이고, 결혼 시장에는 의사 변호사 못지않은 ‘하이닉사’(하이닉스 직원)라는 말도 등장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한 반도체는 온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성공한 장남처럼 어깨가 무겁다.

반도체 초호황은 한국 경제에 행운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직장인 평균 연봉의 10배가 훨씬 넘는 성과급을 한번에 챙긴 삼성과 하이닉스 반도체 직원들의 모습은 ‘직장인들 사는 건 다 비슷하다’라는 동질적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에 큰 균열을 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인공지능(AI) 반도체 붐이 ‘가진 자’와 ‘더 가진 자’를 갈라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성과에 연동된 성과급은 고정적으로 주는 임금과 다르다. 누구에게 얼마를 주느냐는 삼성전자 경영진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데, 정부까지 나서 막대한 성과급을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결정했다. 원칙이 꼬이자, 여기저기서 내 몫도 달라는 요구가 분출했다. 급기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초과이익’ 분배를 위한 토론회까지 제안했고, 14일 관련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처럼 기업 초과이익에 특별목적세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을 일회성 재건축 사업과 비교할 수는 없다. 큰 이익이 났다고 해서 사후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대박을 꿈꾸며 창업에 도전할 젊은이나 손실을 무릅쓰고 미래에 투자할 기업가가 나오겠나. 황금알을 낳을 거위를 키우기는커녕 싹부터 자를 일이다.

원칙이 흔들리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AI, 피지컬 AI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까지 교섭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입법한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에 따라 조합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 결정 또한 교섭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부는 “‘기업 투자’ ‘공장 증설’ 등 사업 경영상의 결정 자체는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라면서도 “이행 과정에서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불씨를 남겼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은 주주 이익을 주장하며 개정 상법을 들고나왔다. 펀드매니저들이 주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가장 극대화되는,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며 SK하이닉스의 1100조 원 투자 결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제조업이 엔진이라면 자본시장은 변속기”라고 했지만, 메가 프로젝트에 제동을 건 이들이 변속기 역할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여당이 판을 깐 노란봉투법과 개정 상법이 ‘가진 자’와 ‘더 가지려는 자’의 무기로 동원되지 않으려면 이해관계자들이 당장의 이익보다 회사의 미래를 먼저 바라보도록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정부, 투자자, 노조가 이해관계의 공통 분모인 기업 영속성을 앞세우면 다툴 일도 줄어든다.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해야 정부는 세금을 걷고 노동자나 투자자도 임금과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MBK가 인수한 홈플러스나 노조가 감독이사회에 참여하는 독일 폭스바겐처럼 위기에 몰리면 결국 노조, 투자자, 소비자, 협력업체가 피해를 보는 게 현실이다. 삼성과 SK가 밝힌 반도체 투자는 전력, 인재, 용수 등의 인프라와 사업성이 있어야 가능한 조건부 투자 계획이다. 경영진이 투자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나 투자자, 노조 이익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대법원 판례로 인정된 경영 판단 원칙이 중요하다. 경영진이 회사 이익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합리적 절차를 밟았다면 투자 결정이나 성과급 등에 대한 경영 판단은 법적으로 보호하고 존중해야 원칙이 선다. 그렇지 못하면 14년 전 파산 위기의 하이닉스를 인수한 SK의 과감한 투자와 같은 결단을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반도체는 2년 전만 해도 가격 하락과 재고 누적에 시달렸다. 반도체의 폭발적 수요를 이끈 빅테크들이 투자를 줄이거나 중국 등 추격자들이 기술 격차를 좁히고 공급을 크게 늘리면 호황은 언제든 위기로 바뀔 수 있다. ‘피크 반도체’를 대비해 성장과 투자 엔진을 점검하고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지금은 숟가락을 들고 다투던 이들이 나중에는 2년 전처럼 또 서로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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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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