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강홍구]1001일 기다린 김주형… 인내의 무게 알아본 우즈

10 hours ago 5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골프는 기다림의 스포츠다. 단 한 번의 완벽한 샷을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연습 스윙을 해야 한다. 때론 나아가기보다 한 걸음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서두른다고 결코 빨리, 멀리 갈 수 없는 것이 바로 골프다.

2002년생 골퍼 김주형은 누구보다 일찍 성공을 경험한 선수다. 2022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당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20세 1개월 17일)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20세 9개월 6일)보다 빠른 기록이었다. PGA투어는 김주형에 대해 “거울에 비친 우즈를 보는 것 같다”며 새로운 슈퍼스타의 등장을 예고했다.

그러나 골프는 천재에게도 기다림을 요구했다. 첫 우승 후 1년 2개월 만에 3승을 쓸어 담았던 김주형은 이후 3년 가까이 긴 부진에 빠졌다. 마지막 우승 이후 66개 대회에서 단 두 차례만 톱3에 들었고 세계랭킹은 11위에서 152위까지 밀려났다. 우승은커녕 다음 시즌 투어 카드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한 골프 전문매체는 김주형의 부진을 두고 ‘충격적인 추락’이라고 표현했다.

그랬던 김주형이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 67개 대회, 1001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13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김주형에게 가장 먼저 축하 문자를 보낸 인물이 우즈라는 사실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즈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성공했고 누구보다 깊이 추락했다. ‘타이거 슬램’(두 해에 걸쳐 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사생활 스캔들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2019년 마스터스에서 14년 만에 우승하며 재기했지만 2년 뒤 선수 생명마저 위협받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이후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면서도 투어 최다승 신기록인 83승에 대한 목표를 놓지 않고 있다. 우즈는 기다림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다.

김주형에게 우즈는 단순한 우상이 아니다. TV 중계 화면 속 머나먼 별 같던 우즈는 김주형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 멘토가 됐다. 지난해 출범한 스크린골프리그 ‘TGL’에서 한 팀으로 뛰면서 김주형은 우즈의 플레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고,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우즈 역시 자신의 쇼트 게임과 퍼팅 노하우를 전수했다.

기술보다 더 크게 배운 것은 골프를 대하는 자세였다. 지난해 3월 TGL 경기 도중 김주형이 칩샷이 들어간 줄 알고 웨지를 내던지는 세리머니를 했다가 공이 홀을 돌아 나오자 우즈가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당시 김주형은 “공이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우즈의 옛 스윙 코치(숀 폴리)의 지도를 받는 김주형은 최근 3년 전 우승 당시 썼던 블레이드 퍼터를 다시 꺼내 들며 초심을 다잡기도 했다. 스코티시 오픈 뒤 김주형은 “골프와 인생에서 인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우즈가 가장 먼저 보낸 축하 문자는 ‘네가 보낸 기다림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응답과도 같았을 것이다. 이번 우승이 김주형에게 준 선물은 트로피가 아니라 숱한 기다림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스윙을 의심하지 않는 법이 아니었을까. 모든 기다림은 자신을 채워가는 시간이다. 김주형의 1001일은 결코 멈춰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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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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