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예술적 승화...이 시대 팝의 女帝 레이디 가가

4 days ago 1
“결국 모든 혼란은 기쁨의 힘을 가르쳐주고, 울고 웃으며 음악을 즐기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합니다.” - 레이디 가가 인터뷰 中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레이디 가가’와 ‘조앤’ 두 자아가 창조한 혼돈의 세계관 MAYHEM

세상에 유명한 아티스트는 좀 있다. 유명하면서 롱런하는 아티스트는 드물다. 레이디 가가 (Lady Gaga, *본명: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제르마노타 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는 고통과 어둠을 환희의 예술로 승화시킨 독보적인 뮤지션이다.

데뷔 이후 17년 동안 그는 명성을 얻었고 <Fame(2008)>, 괴물로 변신했으며 <Fame Monster(2009)>,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을 용기 내어 노래했다 <Born This Way(2011)>.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면서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았고 <Artpop(2013)>, 레이디 가가의 본모습으로 돌아가 <Joanne(2016)>, 혼란과 분열로 가득한 세상에 화해와 평화의 색을 입혔다 <Chromatica(2020)>. 화려한 모습 뒤에서 그는 어릴 때 겪은 성폭행의 상처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우울증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고,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 심한 섬유근육통을 앓았다.

레이디 가가는 고통과 환희 양극단을 오가며 치열하게 살아남은 아티스트였다. 팬들은 그를 ‘마더 몬스터(Mother Monster)’ 라 불렀고, 자신들을 ‘베이비 몬스터’라 칭한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적 세계관은 분열, 혼돈, 충돌의 삼각지대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예술 작품이다. 새 앨범 <MAYHEM(2025)>도 그 연장선에 있다. 대혼란, 혼돈을 의미하는 이 앨범에서 레이디 가가는 두 자아(가가와 조앤)가 양립하는 방법론을 통해 일기 같은 노래들을 담았다.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때론 그로테스크하고, 오컬트적이며, 과도한 표현주의로 오해를 받던 것조차도 이젠 하나의 자아로 품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음악적으로는 1980년대 신스팝의 재해석을 바탕으로 콤플렉스트로 테크하우스 등 강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담았고 프레디 머큐리, 록시트 등에 대한 존경을 녹였다. 앨범 <MAYHEM>은 발매 첫날 스포티파이에서 4530만 회 재생 횟수라는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와 함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이제, 마더 몬스터가 무대에 오를 시간이다.

지난 4월 코첼라에서 화려한 귀환을 알린 그는 5월 3일 브라질 리오에서 2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라이브 퍼포먼스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지난 5월 18일, 19일, 21일, 24일 <The MAYHEM Ball Tour>의 시발점을 알리는 공연이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레이디 가가는 4일간 약 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매초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레이디 가가 'Poker Face' - 2025 코첼라]

혼돈의 예술에서 영원의 아리아로 이르는 4악장
팝의 르네상스를 일군 레이디 가가

24일 토요일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을 찾았을 때, 레이디 가가의 의상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베이비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공연 기념품 부스도 약 1시간 정도 기다려야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줄이 길었다. 특히, 아시아 각지에서 몰린 LGBTQ 관객들은 의상, 메이크업, 타투 등을 통해 에너지를 뽐냈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장은 표현주의자들의 자유로운 놀이터였다.

인트로나 별다른 게스트 없이 오직 레이디 가가의 무대로만 꾸며진 이번 공연은 <Act I : Of Velvet And Vice>, <Act II : And She Fell Into A Gothic Dream>, <Act III : The Beautiful Nightmare That Knows Her Name>, <Act IV : To Wake Her Is To Lose Her> 등 크게 4악장으로 이뤄졌다. 악몽의 여정을 떠나 깨어나기까지의 분열과 혼돈의 무대가 공연장 전체를 흔들어 놓고, 마지막 파트인 <Eternal Aria Of The Monster Heart>에서 곡 'Bad Romance'로 마침표를 찍는 여정이다.

공연 전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 / 사진. ⓒ이진섭

공연 전 싱가포르 내셔널 스타디움 / 사진. ⓒ이진섭

<Act I : Of Velvet And Vice> 암흑에서 탄생한 마더 몬스터

오후 8시 33분, 무대 양옆에 설치된 LED 화면에서 마더 몬스터인 ‘레이디 가가’와 레이디 가가의 원형인 ‘조앤’이 등장해 <The Manifesto of MAYHEM>을 낭송하면서 ACT 1의 문을 연다. 암흑을 가르는 붉은 조명이 짙게 깔리고, 레드 벨벳으로 치장한 거대한 드레스 중앙을 우뚝 솟으며 레이디 가가가 등장했다. 마더 몬스터의 성스러운 귀환을 알린 첫 곡 'Bloody Mary'가 끝나고 강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관현악이 합쳐져 'Abracadabra'로 이어졌다. 드레스의 장막이 걷히고, 새장에 갇힌 혼돈의 자아들과 그 속을 헤치고 레이디 가가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초기 시절로 회귀해 레이디 가가의 원초적 DNA를 상기시킨 'Judas와 Scheiße'.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며 무대를 활보한 'Garden of Eden'에서 관객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 ACT 1의 하이라이트는 'Poker Face'였다. 레이디 가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알렉산더 맥퀸의 2005년 SS 컬렉션 패션쇼 <It’s Only a Game>을 재해석한 무대는 체스판 위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들이 서로 대결하는 퍼포먼스로 꾸며졌다.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Act II : And She Fell Into A Gothic Dream> 모래판 위에 펼쳐진 춤추는 죽음

해골 마스크를 쓴 안무가들과 모래판 위에 비스듬히 누워 펼쳐낸 Act II.는 그로데크스적 표현예술에 있어서 레이디 가가가 이 구역 1인자임을 증명한 무대였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신은 더 완벽한 셀레브리티임을 노래한 'Perfect Celebrity'와 고통과 상처, 치유에 관한 노래 'Disease'를 모래 위에서 노래한 레이디 가가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완벽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구사해냈다. 이어지는 'Paparazzi', 'Alejandro', 'The Beast'로 한숨을 돌린 그는 다음 Act를 이어갔다.

Act II 'Disease' 공연 중인 레이디 가가 / 사진. ⓒ이진섭

Act II 'Disease' 공연 중인 레이디 가가 / 사진. ⓒ이진섭

<Act III : The Beautiful Nightmare That Knows Her Name> 혼돈의 세례식

발랄한 드러머 토시 패터슨의 연주로 화려하게 문을 연 Act III.는 곡 'Killah'로 시작을 알렸다. 무대는 성전으로 변했고, 레이디 가가는 곡마다 블루톤의 의상으로 멋을 살렸다. 요절한 캐나다 아티스트 릭 제네스트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곡 'Zombieboy',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인기를 끌었던 트랙 'Die With a Smile', 신스팝과 레이디 가가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만나 화려한 색감을 뿜어내는 'How Bad Do U Want Me' 그리고 'Wake Her Up!'으로 한바탕 혼돈의 세례식이 치러진 듯했다.

<Act IV : To Wake Her Is To Lose Her> 본 디스 웨이 탄생 14주년을 기념하며

5월 23일은 앨범 <Born This Way>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레이디 가가는 24일 공연에서 <Born This Way> 탄생 14주년을 자축하면서, 팬들에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LGBTQ에게 상징과도 같은 노래이기에 공연 후 주변에서 환희의 눈물을 보이는 관객들도 보였다. 레이디 가가가 출연했던 영화 <A Star is Born>에 수록된 'Always Remember Us This Way'와 'Shallow'를 부르면서, 이 무대가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노력, 상처와 견딤으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고, 모든 스태프를 무대로 불러 함께 노래했고, 'Bad Romance'는 영원의 아리아가 되어 공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사진출처. Live Nation SG/Facebook

팝의 르네상스를 일군 레이디 가가

데뷔 17년 차 뮤지션이 자신의 새로운 앨범으로 공연의 세트 리스트를 구성한 것은 어지간한 자신감과 노력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수학 공식처럼 정교하고,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웠던 그의 공연은 팝의 르네상스를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핍박받고, 고통받은 영혼을 위해 노래한 그가 앞으로 향하는 길을 우리는 ‘전설’이라고 한다.

“깨진 거울 조각을 다시 맞추는 과정 같아요. 완전히 돌아갈 수 없으나 새롭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어요.” - 레이디가가 Pitchfork 인터뷰 中

싱가포르=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