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투자금액 3천억원
2023년보다 16% 크게 늘어
뉴욕·샌프란 등 대도시 인기
달러강세로 자산 매입 목적에
세금 절감 등 수요도 늘어
20일 건설공제조합서 설명회도
서울에 거주하는 사업가 김 모씨(47)는 최근 미국 서부 지역에 주택을 구매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IT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미국 출장이 잦은데 집을 아예 사버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달러 자산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고, 중학생인 자녀가 혹시 미국으로 유학 갈 경우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주변에서 미국 부동산을 알아보는 경우를 꽤 봤다”며 “(미국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도 적다고 들었고, 자산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큰손’ 자산가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들어서고, 원화가 약세를 띠면서 자산 일부를 미국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작용하는 양상이다.
예전에는 자산가가 상속·증여세를 피해 한국을 떠났다면, 요즘 투자 유목민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더 복합적이다. 서동기 엠비아 대표는 “한국의 저성장과 다주택자 규제, 지난해 말 정치적 불안 등이 다각적으로 작용했다”며 “요즘은 유학·관광이 늘면서 젊은 층 중심으로 해외에 ‘내 집 마련’에 대한 거부감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15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해외 국가별 국내 개인 및 법인 부동산 취득 송금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거주자가 미국 부동산을 위해 현지로 송금한 규모는 2억7130만달러(약 3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2억3260만달러와 비교해 16.6% 늘어난 수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이유에는 세금과 관련한 문제가 컸다. 어태수 네오집스 대표는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일반적으로 상속·증여세가 한국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며 “세금도 아끼면서 영주권을 동시에 취득하려는 수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부분 때문에 초고액 자산가 등 일부 계층만 미국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엔 분위기가 바뀌었다.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한국 밖으로 이동하는 ‘투자 노마드족’의 눈길이 미국 부동산까지 향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이 부채를 뺀 해외에 보유한 자산(순대외 금융자산)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달러를 돌파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부동산으로 결국 유동성이 흐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서동기 대표는 “달러화 자산 축적이 가능한 미국은 해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투자처”라며 “유튜브나 카카오 오픈채팅 등 정보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미국 부동산 투자에 대한 심리 장벽도 예전보다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자녀 교육 목적으로 미국행 티켓을 사려는 수요도 급증했다. 투자이민 컨설팅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500만달러(약 72억원)에 미국 영주권을 파는 골드비자 구상안을 발표하자 80만달러 투자이민(EB-5) 관련 상담 전화가 폭증했다”며 “미국행 티겟값이 더 비싸지기 전에 80만달러에라도 영주권을 받아두려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미국 현지 투자는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권이 인기가 많다. 유학생이 많이 상주하고, 사업 교류가 많은 미국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문태영 코리니 대표는 “대도시는 콘도미니엄(한국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의 공동주택) 수요가 많고, 뉴저지나 보스턴 등은 타운하우스 인기가 높다”며 “하와이 같은 휴양지는 세컨드홈으로 활용 가능한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도 꽤 많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 부동산 투자를 고려할 땐 주의할 점도 있다. 현지 실사 없이 중개업체 설명만 믿고 진행된 투자 중 일부는 잔금 미납, 임대 실패, 허위 등기 등의 문제를 겪을 위험이 있다. 미국은 연방국가 체제로 주마다 세금, 부동산 제도, 소유권 구조가 매우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서 대표는 “미국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반드시 현지 네트워크가 포함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철저한 정보 수집과 법률·세무 전문가, 현지 부동산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투자·사업 진출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와 연계해 ‘미국 부동산 참관단’을 모집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윌셔ABC리얼티그룹과 협력체계를 유지 중인 (주)엠비아도 비슷한 목적의 행사를 개최한다. 20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공제조합 건물 11층 Acpmp 라운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