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팝니다,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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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팝니다, 삽니다

매대 앞에 선 객(客)의 미간에는 주름이 져 있기 마련이다. 바쁜 아빠의 미안함을 지렛대 삼아 새로운 장난감을 고르는 아이도, 오래간만에 함께하는 저녁자리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아내도 선택의 순간만큼은 고민하고 또 비교한다. 지갑을 열기 전 따지고 또 따지는 자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일 무서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본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유권자가 투표 현장에서 후보를 고르는 원리도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과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종종 선거가 일련의 판매 과정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유권자는 소비자요, 정당은 후보라는 상품을 파는 판매자로 생각해보자. 선거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적이고도 필수적인 전제 요소가 아닌가. 선거라는 국민의 선택이 있기 때문에 각 정당은 자기 당 후보와 공약이 민심에 더 부합한다고 어필한다. 유권자들은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내일을 위해 조금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한다고 여기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일 수 있지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인들의 전략은 상당 부분 그 시대와 사회가 필요로 한 가치와 맞닿은 경우가 많다. 끝날 줄 모르는 경제위기에 지친 미국 사회가 쇼맨십으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한 것, 안보 위협과 경제 불안정을 오랜 기간 겪은 영국 사회가 실용주의와 이민 통제를 내세운 키어 스타머를 총리로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캐나다 집권당인 자유당이 지난 3월 내놓은 최종 상품인 ‘마크 카니’ 총리도 대표적 사례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비정치인 출신이지만 트럼프발 관세 압박에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대응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자유당은 글로벌 자국 우선주의 시대에 가장 잘 맞는 상품을 꺼내 든 것이다.

다음달 3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어떤가. 원래 5년에 한 번 열리는 ‘5년장’인데 이번 대선은 예정돼 있지 않은 시장이니 비유하자면 ‘팝업스토어’다. 그렇다면 혼란스러운 소비자(유권자)를 붙잡기 위해 판매자(정당)들이 국민 앞에 팔겠다고 내놓은 물건은 지금 이 시점에 가장 매력적인 ‘최고 상품’이어야 한다. 제1야당 후보는 막강한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있지만 사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 다른 정당은 경선을 통해 확정된 후보와 현재 거론되는 외부 인사 중 최종적으로 누구를 ‘베스트 상품’으로 팔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시장은 열렸지만 이 상품들을 진짜 구매해도 될지 아리송한 상황이다.

요즘 필자도 이 시장에서 상품을 팔아보겠다고 소비자 앞에 선 상인의 심정이다. 공약을 다듬기 위해 매일 회의를 거듭하고 후보의 동선을 짜며 상품이 잘 팔리는 마케팅을 고민해본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소비자 효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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