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00억원을 투자한 7년 만기 사모펀드(PEF)가 있다. 투자 2년 만에 50억원을 회수했지만 5년이 지난 오늘, 남은 투자금은 거둬들이지 못했다. 이 펀드의 ‘납입금 대비 분배율’(DPI·Distributed to Paid-In)은 0.5다. 만기가 다가오지만 아직 원금도 회수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투자에 가깝다.
이 펀드를 내부수익률(IRR·Internal Rate of Return)로 평가하면 얘기가 다르다. PEF 운용사가 남은 자산 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는지에 따라 다르지만 80억원이라고 임의 평가할 때 IRR은 20.11%에 달한다. 연 환산 수익률을 나타내는 IRR 기준 수익률이 8%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펀드는 순식간에 성공한 투자가 된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PEF에 출자한 출자자(LP) 사이에서 IRR을 대체해 DPI 중시론이 떠오르는 배경이다.
임기 내 성과 위해 회수 압박
펀드에 자금을 댄 큰손에게 PEF가 투자금을 얼마나 돌려줬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DPI가 중요해진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DPI를 중시하는 이유가 연기금이나 공제회 담당자의 밥그릇과도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의 대체투자 담당 직원은 투자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기 내 성과를 내는 것이다. 담당 부서가 바뀌거나 자신을 끌어주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임기를 마치고 난 뒤 나온 성과는 의미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체투자 담당자는 PEF에 우회적으로 빠른 투자금 회수를 압박한다. 자본시장법상 LP는 PEF에 펀드 운용 관련 지시를 할 수 없지만 갑을 관계인 공제회와 PEF 사이엔 보이지 않는 지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음 펀드는 출자를 안 받을 생각이냐”는 공제회 담당자 말 한마디에 수조원을 굴리는 PEF도 꼼짝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PEF가 공제회 자금으로 투자한 회사들이 망가질 수 있다. PEF는 장기적 관점으로 회사를 더 키우고 좋은 수익률을 낼 기회가 있음에도 연기금이나 공제회 담당자의 임기 내 성과를 위해 서둘러 매각한다. 회사를 인수한 직후 사내 유보 현금을 활용해 무리하게 배당에 나서기도 한다. 업계에선 “PEF가 이해가 안 되는 의사결정을 하면 주요 연기금이나 공제회의 인사 배경을 살펴보면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익 추구하다 곳곳에서 스캔들
PEF의 투자 회수 성과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DPI를 중시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DPI를 명분으로 잇속을 챙기려는 펀드 출자 담당자다. 투자 역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PEF와 네트워크를 쌓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제회와 PEF의 공통 목표가 수익률 외 다른 쪽으로 엇나가기 시작하면 스캔들이 된다.
최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한국교직원공제회 등 9개 주요 공제회의 민낯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건설근로자공제회 CIO는 해외 브로커를 낀 투자 사업에 공제회 자금을 출자하며 수억원의 리베이트를 차명으로 챙겼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직원은 대학 동문이 운용하는 펀드에 200억원을 쏴줬다가 지난해 말 기준 80%가 넘는 손실률을 기록했다. 교직원공제회는 운용사 말만 믿고 투자심의위원회조차 거치지 않은 뒤 ‘물타기’에 나섰다가 미국 내 30여 개 호텔에 투자한 원금은 물론이고 추가 투자한 자금까지 전액 손실 위기에 처했다.
교직원공제회가 지난해 대체투자에 투입한 자금만 41조원에 이른다. 모두 교사와 교직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교직원공제회 대체투자 담당자가 어떤 PEF를 선택해 자금을 출자하는지, 해당 PEF가 수익률을 얼마나 거두는지에 교사와 교직원 노후가 달려 있다. 경찰·소방공무원, 지방공무원의 노후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사익을 위해 회원들의 노후 자금을 쥐락펴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