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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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6.03 17:47 수정2025.06.03 17:47 지면A28

[한경에세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K장녀의 심금을 울린 영화.’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떠올려도 여전히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가 있다. 2023년 개봉해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하며 그해 개봉 외화 중 최고 흥행작이 된 ‘엘리멘탈’이다. 특이점이라면 한국이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 나라라는 것이다. 많은 한국 관객이 주인공 ‘앰버’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다. 책임감 강한 ‘K장녀’처럼, 앰버는 부모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미뤄두려 한다.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지만, 자기 자신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앰버의 내적 갈등은 많은 한국 자녀의 복잡한 감정을 조용히 건드렸다.

이처럼 국적 및 배경보다 더 중요한 건 감정의 거리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엔 언제나 ‘나와 닮은 감정’이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순히 ‘좋은 콘텐츠’나 ‘멋진 제품’만으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대신 그 속에 ‘내가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콘텐츠든 브랜드든 소비자의 마음 깊은 곳에 닿아 가까이서 공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 시대다.

‘릴로 & 스티치’ 한국 탐방 포스터가 큰 호응을 얻은 것도 그래서다. 스티치가 한강 공원에서 라면을 먹고, 광안리에서 서핑을 즐기며, 경북 경주 첨성대나 제주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귀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닮았다. 누군가의 일상에 깃든 정서를 섬세히 이해하고, 그 안에 스며들듯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로컬라이제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로컬라이제이션은 이제 외형이나 번역의 문제를 넘어, 글로벌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지역 고유의 감정과 기억을 이야기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보편성과 지역성이 공존하는 스토리로 관객과 이어지는 것-그 연결이 브랜드의 진정성을 결정짓는다. 현지 문화를 얼마나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가와 그 태도의 차이가 신뢰의 시작점이 된다.

디즈니가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한국 로컬 콘텐츠를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년 가을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미키 인(in) 덕수궁: 아트, 경계를 넘어서’ 전에 전시된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한국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디즈니 캐릭터 제품, 색동 한복을 곱게 입은 미키와 미니가 그려진 버스카드까지. 그 모든 장면은 이야기를 건네는 태도의 표현이기도 하다.

‘엘리멘탈’을 떠올리며 다시금 깨닫는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 태도가 중요하다. 디즈니가 바라보는 로컬라이제이션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 같다”는 말을 듣는 것. 콘텐츠 브랜드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피드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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