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리더의 특권은 가장 앞에 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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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리더의 특권은 가장 앞에 서는 것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남미 인디언 추장에게 물었다. “당신의 특권은 무엇입니까?”

추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맨 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리더의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가장 먼저 짊어지는 자리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의 수장, 즉 시장이라는 자리는 단지 시정을 홍보하거나 행사에서 박수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관내 공무원 조직과 수많은 시민단체, 이해관계자들의 중심에서 때로는 갈등을 조정하고,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어려운 결정을 밀어붙여야 하는 자리다. 명실상부한 ‘선봉장’의 자리인 셈이다.

민선 8기 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환경사업소(하수처리장)의 위치 선정이었다. 제3기 재건축과 과천과천지구, 과천주암지구 등 신도시 개발로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려면 필수적인 기반 시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정 부지 인근 주민의 강력한 반대로 수년째 결정이 미뤄지고 있었고, 3년 전 완공된 공영주차장도 학부모 민원으로 개방조차 못 하고 있었다.

통상 이런 갈등은 담당 부서에서 설명회를 열고, 시장은 뒤에서 보고만 받는 구조로 흘러간다. 하지만 나는 ‘당위보다 설득이 중요하다’는 믿음 아래, 직접 주민들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날은 격분한 시민의 날 선 비난과 언성을 감당해야 했고, 때로는 인격적인 모욕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 그런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물고기처럼 시장과 시민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올해 봄, 나는 스스로 과천지식정보타운으로 이사를 했다. 시장으로서 시민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그들의 불편을 알 수 있을까? 행정 보고서보다 중요한 건 매일 마주치는 생활의 불편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시민의 목소리였다. 이삿짐을 들고 지식정보타운의 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시민 한 분이 나를 보고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님, 진짜 오셨어요?” 그 한마디가 나의 결심을 더욱 단단하게 해줬다.

해외에서도 리더가 시민 곁으로 다가간 사례는 많다. 핀란드의 한 시장은 눈 내린 날마다 제설차에 탑승해 도로를 점검하며 시민과 소통했고, 일본 구마모토현의 지사는 대지진 이후 직접 피난소에서 시민들과 먹고 자며 복구 계획을 논의했다. 이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시민의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문현답(現問現答)’, 현장에 가서 직접 묻고 듣는 자세. 이것이 리더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특권이자, 가장 먼저 앞에 서야 할 이유다.

칭찬보다 비판이 많은 길이지만, 시민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면 나는 언제든지 맨 앞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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