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이들이 세상을 구한다"...한국형 슈퍼히어로물 정수 보여줄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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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도 DC도 하향길을 걷고 있는 마당에 한국에서만큼은 글로벌 대세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제작되고, 나름 만족스러운 흥행까지 거두고 있는 슈퍼히어로 장르. 강풀 원작의 드라마 <무빙>,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가 대표적 예다. 이번 주 개봉을 앞둔 또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 <하이파이브> 역시 이러한 성공 반열에 올라갈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어쩌면 여태껏 만들어진 ‘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 중 가장 놀라운 기록으로 말이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왜 유독 한국에서는 이 구태의연한 장르가 유효한지에 대한 나름의 분석은 일단 차치하고 <스윙 키즈> 이후로 7년 만에 귀환한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이식수술을 받고 어쩌다 '슈퍼히어로'가 된 다섯 명의 타인이 만나 공공의 적을 물리치고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는 히어로 영화이자 가족드라마다. <무빙>, <염력> 등 이전의 한국형 슈퍼히어로 콘텐츠들이 그랬듯, 이번 작품 역시 헌신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통한 부성(父性), 그리고 소외된 이들이 일종의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룬다는 내용을 지닌 서사가 여지없이 두드러진다. 이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한국의 그것이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러한 지역화(localization)는 아직도 이 장르가 한국 시장에서 꾸준히 제작, 소비되는 경향에 기여하는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태권도장의 딸 완서(이재인)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으며 전개된다. 완서의 아버지이자 왕년의 금메달리스트 태권도 선수 종민(오정세)은 엄마 없이 자란 완서가 수술 후에도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잘 지내던 완서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징후들이 생겨나는데 그것은 바로 난데없는 초능력. 완서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거나 초인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그야말로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녀는 같은 기증자에게 다른 장기를 이식받은 네 명의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쿠르트 아줌마 선녀(라미란)는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능력, 사이비 교단이 운영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약선(김희원)은 치유 능력,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은 강풍을 부는 능력, 백수인 기동(유아인)은 손끝으로 와이파이를 조작하는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장기와 능력을 노리는 또 다른 이식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췌장을 이식받고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 박진영)은 영생을 얻기 위해 다섯 명을 포획할 음모를 꾸민다.

"하찮은 이들이 세상을 구한다"...한국형 슈퍼히어로물 정수 보여줄 '하이파이브'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강형철 감독은 전작들인 <써니>, <스윙 키즈>의 기반이 되는 앙상블 캐릭터의 서사적 구조를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 나간다.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 그의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외톨이이거나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낙오자, 아니면 지독히도 평범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존재하지 않는 미미한 인물인 것이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필연적으로 연대한다. 캐릭터들의 우정과 연대는 그들이 결핍과 외로움을 치유하는 유일한 루트이고 동시에 그것은 결국 불행한 인생들을 구제하거나(<써니>), 전쟁의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스윙 키즈>) 기적을 만들어 낸다. 더 나아가 <하이파이브>의 캐릭터들은 공장의 노동자를 살리고, 몇천 명이 넘는 사이비 교단의 교인들을 구해내는 등 강형철 감독의 이전 캐릭터들이 해냈던 선행을 초월한 업적을 이뤄낸다. 물론 그것은 이들이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하이파이브>는 ‘미미한 인물들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강형철 감독의 세계관을 계승하는 프로젝트이지만 영화는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더 큰 다이내믹과 영리한 리듬감으로 중무장한 감독의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최고 작품으로 평가할 만한 영화다. 특히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가장 중추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의 설정은 단순히 악을 물리치는 상황만이 아닌 지극히 소소하고 한국적인 (예를 들어 지성이 완서와 학교 운동장에서 리코더를 부는 시퀀스) 에피소드에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대단히 오랜만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한국 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스펙터클, 인물의 캐리커처, 대사와 상황극 등 <하이파이브>는 좋은 상업 영화가 갖추어야 할 다수의 요소를 충족하는 수작이다. 강형철 감독의 또 다른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신나는 디스코그래피가 함께함은 물론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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