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나·조 삼국시대' 막 내린 男 테니스, '신·알 양강체제' 본격 개막

4 hours ago 4
  • 등록 2025-07-14 오후 7:38:29

    수정 2025-07-14 오후 7:38:29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세계 남자 테니스에서 지난 20년간 이어온 ‘페·나·조’(로저 페더러·라파엘 나달·노바크 조코비치) 삼국지가 완전히 저물고 ‘신·알 쌍두마차’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렸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이 끝난 뒤 얀니크 신네르(오른쪽)과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어깨동무를 한 채 코트를 나오고 있다. 사진=AFPBBNews

세계랭킹 1위 얀니크 신네르(23·이탈리아)는 14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결승에서 2위 카를로스 알카라스(22·스페인)를 세트스코어 3-1(4-6 6-4 6-4 6-4)로 이겼다.

이로써 신네르는 개인통산 네 번째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앞서 지난해 호주오픈과 US오픈을 제패했고 올해는 윔블던 이전에 호주오픈 2연패를 이뤘다.

이탈리아 선수로선 최초로 윔블던을 정복한 신네르는 프랑스오픈만 정복하면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신네르의 이번 우승은 남자 테니스에 새로운 ‘양강 체제’가 완성됐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다. 신네르와 알카라스는 지난해 호주오픈부터 최근 7차례 메이저 대회 우승을 양분했다. 지난 시즌의 경우 호주오픈과 US오픈은 신네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 우승컵은 알카라스가 가져갔다. 올해 세 차례 열린 메이저 대회에서 호주오픈과 윔블던은 신네르, 프랑스오픈은 알카라스가 정상에 등극했다.

그동안 일각에선 신네르가 과연 알카라스의 라이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신네르가 메이저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긴 했지만, 유독 알카라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신네르는 이번 윌블던 대회 전까지 알카라스에 5연패를 당했다. 올해 프랑스오픈 결승에선 먼저 두 세트를 따내고 내리 세 세트를 내줘 역전패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신네르는 이번 대회에서 알카라스를 완벽하게 물리치면서 ‘라이벌 구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여전히 둘의 상대전적은 8승 5패로 알카라스가 앞서 있지만, 메이저대회 결승 전적은 1승 1패로 균형을 맞췄다.

신네르와 알카라스의 라이벌 구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둘의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신네르가 정석적인 ‘교과서’라면 알카라스는 자유로운 ‘예술가’다.

신네르는 191cm의 큰 키를 활용한 강서브가 일품이다. 랠리 때는 베이스라인에서 주로 머물면서 위력적인 스트로크로 경기를 푼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정확한 샷으로 상대를 질식시킨다. 마치 로봇처럼 침착하고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간다.

반면 알카라스는 과감하고 공격적인 샷을 좋아한다. 파워는 살짝 떨어지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경기를 풀어간다. 한때는 라파엘 나달과 같은 클레이코트 전문선수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완성형 선수로 인정받는다. 일부 팬들은 알카라스의 테니스를 ‘프리스타일 댄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성격도 다르다. 외향적인 알카라스는 코트 위에서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팬들과 소통도 적극적이다. MBTI로 따지만 전형적인 ‘E’다. 반면 신네르는 차분하면서 진지한 성격이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외부활동도 많은 편이 아니다. MBTI로 비유하면 명백한 ‘I’다.

세계 테니스계는 벌써부터 둘의 관계를 페더러-나달, 존 메켄로-비외른 보리 등 역사적인 라이벌과 비교하면서 주목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20대 초반 젊은 선수인 만큼 지금보다 기량이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앞으로도 정상에서 수많은 명승부가 펼쳐질 것이라는 의미다.

코트 위에선 뜨거운 라이벌이지만 코트 밖에선 좋은 친구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던 페더러와 나달 처럼 신네르와 알카라스도 서로에 대한 존중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냉혹한 경쟁의 세계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부분이다.

두 선수는 지난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두 선수가 자신에게 유리한 오심을 스스로 정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악동들이 수두룩한 남자 테니스계에서 실력 만큼이나 훌륭한 인성을 갖췄다는 것도 둘의 공통점이다.

신네르는 결승전을 마친 뒤 “알카라스에게서 계속 배우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그가 나보다 더 잘하는 것을 여러가지 발견했다”며 “앞으로도 우린 계속 만날 것이다. 그의 좋은 점을 배우면서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알카라스도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는 “우리의 라이벌 관계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고, 계속 나아질 것이다”며 “오늘 패배는 슬프지만 신네르가 믿기 어려운 수준의 플레이를 펼쳤기에 고개를 높이 들고 코트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얀니크 신네르(왼쪽)와 준우승한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나란히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