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일본 야구의 월드시리즈 침공
다저스 2연패 이끈 日 트리오… ‘투타겸업’ 오타니, 루스 넘어
야마모토는 신체적 한계 극복… 사사키도 불펜투수로 연착륙
‘상식 밖’ 사고와 훈련의 결과… 월드시리즈를 저팬시리즈로

1934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1895∼1948)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올스타 팀의 일원으로 일본을 찾았을 때 도쿄 긴자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 행사에는 5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했다. 루스는 일본에서 ‘야구의 신’ 대접을 받았다. 당시 MLB 올스타팀은 일본 올스타팀을 상대로 18차례 경기를 했는데 18번 모두 이겼다.
“야마모토는 ‘전설’(GOAT·Greatest Of All Time)이다!”
이로부터 91년이 지난 2025년. MLB 월드시리즈 2연패를 확정한 뒤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53)은 그라운드에서 이렇게 외쳤다.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27)는 토론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2차전 완투승, 6차전 6이닝 1실점 선발승을 거뒀다. 그리고 채 하루도 쉬지 않고 등판한 최종 7차전에서는 연장 11회까지 2와 3분의 2이닝 무실점 피칭으로 팀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야마모토의 구원승은 문자 그대로 다저스를 구원했다.● 프로페셔널리즘의 중심서 아마추어리즘을 외치다

“미국에 와서 ‘잘해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야구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패하면 모든 걸 잃게 되는 순간에 와서야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시절의 저를 마주했습니다. 마운드에 오르기 전 마치 그때의 야마모토가 저에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영웅이 되겠다느니 구세주가 되겠다느니 하는 생각은 버려! 그냥 던져!’라고요.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어제 공을 던졌으니까’, ‘팔이 아프니까’ 같은 이유로 외면하는 투수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마모토는 ‘팀에 투수가 없으니까’,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오늘만 버티자’며 등판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 덩치가 작은 축이었던 야마모토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지만 마운드에 서 본 건 중학교 3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에도 ‘샐러리맨’이라는 네 글자를 적어 냈다. MLB는커녕 일본에서 프로 선수로 뛰는 것도 언감생심이었다. 고교도 야구 명문과는 거리가 먼 미야코노조고에 진학했다. 여느 일본의 야구 소년과 마찬가지로 야마모토 역시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 본선 무대를 꿈꾸는 소년 중 하나였다. 지역예선을 통과한 팀만 모여 토너먼트 승부를 펼치는 고시엔 본선에서 우승 팀 선수들은 국민 영웅이 된다. 하지만 나머지 모든 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시엔 구장의 검은 흙을 평생의 기념품으로 챙겨 떠난다. 야마모토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팔꿈치 부상을 안고 지역 예선에 나섰지만 끝내 본선 무대는 밟지 못했다.하지만 고시엔에 가 보지도 못한 약체 팀 에이스 시절에도, MLB 디펜딩 챔피언 팀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공을 던지는 투수가 된 지금도 야마모토는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야마모토는 공을 던졌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오타니의 ‘메이지 유신’

두 일본인 빅리거의 성공은 닮은 듯 다르다. 둘 다 ‘아시아 선수는 힘으로 서양인을 이길 수 없다’는 통념을 넘어섰다. 그런데 전략이 정반대다.
오타니는 최대 타구 속도가 시속 190km를 가뿐히 넘긴다. 이는 MLB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치다. 키 193cm, 몸무게 95kg으로 웬만한 서양 선수들보다 ‘더 압도적인 피지컬’로 몸을 개조해 파워를 얻었다. 오타니는 고교 입학 때만 해도 186cm, 65kg의 마른 체형이었지만 고교 졸업 때는 86kg까지 몸을 키웠다. 하루에 일곱 끼 1만 Cal로 철저히 계산된 식단을 유지하며 근육을 늘렸다.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에서 뛸 때는 식품업체의 지원을 받아 영양을 관리했다. 오타니가 빅리그로 떠날 때 해당 업체 담당자는 일본 음식이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오타니는 “괜찮다. 영양학을 공부해서 이제 어디서든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다”고 답했다.2023년 일본과 미국이 맞붙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마운드에 선 오타니가 미국의 4번 타자 마이크 트라우트(34·LA 에인절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우승을 확정 지은 장면은 ‘오타니 신화’의 상징이 됐다. 오타니 역시 하나마키히가시고 3학년 시절 마지막 고시엔 출전 기회가 걸린 지역 예선에서 패한 뒤 눈물을 흘린 야구 소년이었다. 오타니의 ‘세계 정복’은 19세기 일본이 막부(幕府)를 타도하고 일련의 개혁을 통해 강대국의 기반을 닦은 ‘메이지 유신’을 닮았다.
● 야마모토의 ‘에도 막부’

야마모토는 빅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필수로 여겨지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부터 ‘야다 센세’라 부르는 개인 트레이너 야다 오사무(66)와 따로 훈련하며 근력에 의존하지 않는 지금의 투구 메커니즘을 완성했다.
야다 센세는 일본 오사카의 한 접골원 원장 출신이다. 영어로는 ‘바이오메카닉스 전문가’라고 표현한다. 한국프로야구 선수들도 재활 때 자주 방문해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익숙한 접골원은 일본식 대체 의학 ‘유도정복술’을 활용해 치료를 한다. 기원을 찾자면 일본 전국시대 무술서적까지 올라간다. 골자는 뼈, 관절, 근육, 힘줄, 인대 등에 생기는 골절, 탈구, 염좌, 타박상 등을 수술 없이 자연 치유력을 통해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2017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한 야마모토는 신인 시절부터 근육과 관절에 부하를 일으킬 수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만으로 힘을 극대화하는 자신만의 훈련을 고수했다. 처음엔 팀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야마모토는 실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야마모토는 ‘쇠질’을 하는 여느 선수들과 달리 물구나무를 서거나 몸을 뒤로 굽히는 ‘후굴 자세’ 등으로 전신 근육을 통제하며 힘을 쓰는 감각을 익히는 데 집중한다. 야마모토는 또 팔꿈치에 무리가 간다는 이유로 공 대신 창을 던지는 훈련을 한다. 야마모토의 성공은 자신이 맡은 일에 전념해 완벽을 추구하는 ‘에도 막부’ 시대의 장인 정신을 닮았다.
● “제가 이걸 정답으로 만들겠습니다”
방법론은 다르지만 오타니와 야마모토 둘 모두 아무도 가지 않은 ‘비주류’의 길을 과감히 선택해 성공했다는 점은 같다. 오타니의 ‘투타겸업’은 일본 야구계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고교 시절부터 160km가 넘는 빠른 공을 던졌던 오타니가 MLB에 직행하는 대신 니혼햄 입단을 선택한 것도 니혼햄만이 구체적으로 ‘이도류 육성 계획’을 세워 자신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프로에서는 무리”라는 주류 야구계의 우려 속에서도 구리야마 히데키 당시 니혼햄 감독(64)은 오타니의 투타겸업을 지지해 줬다. 오타니는 결국 LA 에인절스 시절이던 2022년 투수로는 15승을 거두고, 타자로는 34홈런을 때려내며 1918년 루스 이후 104년 만에 ‘10승-10홈런’을 동시에 달성했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 야구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85)은 “오타니가 타자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타니가 2023년 아메리칸리그, 2024년 내셔널리그에서 연달아 홈런왕에 오르자 “일본인이 미국에서 힘과 힘으로 붙어 상대를 제압하고 홈런왕을 차지했다. (NPB 통산 홈런 1위) 오 사다하루도 깜짝 놀라 ‘우리 시대에는 생각도 못 하던 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이를 비웃듯 올해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 4차전에서는 선발투수로 6이닝 무실점 10탈삼진, 타자로는 3홈런을 날리는 ‘인간계’를 넘어선 기록으로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야마모토 역시 일본프로야구 시절부터 ‘주류’가 이해할 수 없는 훈련 방식을 고수해 오고 있다. 야구장에 나와 공 대신 창을 던지고 팀 훈련보다 혼자 훈련하는 시간이 많았던 야마모토를 우려한 구단은 그의 고교 시절 은사 이토 히로시 감독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했다. 이토 감독은 “프로에서는 팀의 방식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야마모토의 대답을 들은 뒤에는 더 이상 말을 보태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이걸 정답으로 만들겠습니다.”
● ‘월드시리즈’를 ‘저팬시리즈’로 만든 日 트리오
야마모토의 이번 월드시리즈 활약에 그가 일본무대를 평정하고 2023시즌 후 MLB 무대로 떠날 때 원 소속팀 오릭스가 내보낸 ‘헌정 광고’도 덩달아 회자되고 있다.
‘솔직히 너무 아쉽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 미국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는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가라, 요시노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일본 최고가 세계 최고라는 걸 증명해 줘.’
올해 월드시리즈는 이를 전 세계에 증명한 무대가 됐다. 다저스에서는 오타니, 야마모토에 이어 사사키 로키(24)까지 ‘일본인 트리오’가 고비마다 팀을 구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올림픽 금메달, WBC 금메달을 모두 차지한 야구 선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셋뿐이다.

빅리그 데뷔 첫 포스트시즌에 구원투수로 변신한 사사키는 디비전시리즈 4차전에서 ‘3이닝 퍼펙트’ 괴력투로 팀을 구했다. 이날 던진 공 36개 공 중 절반이 넘는 19개는 일본야구 ‘특산품’으로 꼽히는 포크볼(스플리터)이었다.
스플리터는 특히 올가을 MLB 마운드를 뜨겁게 달군 구종이다.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신인 월드시리즈 최다 탈삼진(12개)을 기록한 토론토 트레이 예새비지(22)의 주무기도 스플리터였다. 올해 MLB 포스트시즌에서 투수들이 던진 스플리터는 1047개였다. 투구 추적이 시작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간 포스트시즌에서 투수들이 던진 스플리터의 수가 2588개였는데 올해만 그 절반을 던진 것이다.
MLB의 올가을이 일본풍으로 물든 건 어쩌면 개막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가 맞붙은 올 시즌 공식 개막전 ‘저팬시리즈’에 당시 컵스 소속이던 이마나가 쇼타(32), 스즈키 세이야(31)까지 일본인 선수 5명이 출전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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