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황금주 1주’[횡설수설/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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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업가로 유명해진 계기가 된 1970년대 뉴욕 코모도어 호텔 재개발은 손에 없는 것을 파는 ‘봉이 김선달’식이었다. 호텔 인수를 전제로 뉴욕시로부터 세금 탕감을 받고, 뉴욕시 참여를 전제로 가격을 협상한 뒤 계약서만 들고 융자를 받았다. 인수 및 재개발 비용 8000만 달러 중 트럼프가 부담한 건 50만 달러뿐이었다. 대통령이 되고도 변함이 없다. ‘절대 주식’ 딱 한 주를 들고 20조 원 가치의 회사 경영권을 쥐고 흔든다.

▷6월 미국 철강회사 US스틸 지분 100%를 인수한 일본제철은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의 제철소 한 곳을 폐쇄하려다 미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2023년부터 철강 생산은 하지 않고 외부에서 생산된 강판을 압연만 하던 곳이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직접 회사에 전화를 걸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일본제철 측은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 내에서 새 제철소를 짓되 비효율적 설비는 정리하는 최소한의 구조조정마저 벽에 막혔다.

▷일본제철을 굴복시킨 미국 정부의 카드는 ‘황금주’였다. 단 한 주로도 핵심 경영 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 주식이다. 미국 내에서 반대 여론이 높던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황금주 부여와 110억 달러 신규 투자 등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황금주는 미 정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게 주어졌다. 황금주에 대해 일본제철 측은 “상징적 의미일 뿐이며 경영 자율성은 보장된다”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기업 사냥꾼’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미 정부는 정부 지원금을 대가로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반도체뿐 아니라 조선, 방산 기업의 지분에도 군침을 삼킨다. 엔비디아와 AMD의 반도체 대중 수출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중국 내 매출의 15%를 일종의 ‘수출세’로 걷었다. 최근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부가 중국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 사업 매각을 주선하는 대가로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수수료를 챙길 예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가 간에도 막무가내식 거래는 그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관세를 올리곤 협상을 통해 깎아줬다며 생색낸다. 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대미 투자펀드도 한국은 당연히 대출·보증 방식일 거라 생각했지만, 미국 측은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가 동의하면 탄핵당할 것”이라고 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역량을 총동원해 최대한 국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 눈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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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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