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전쟁’ 美中 정상 동시 방한에 판 커져
양국 협력-경쟁 오가 ‘가교’는 도전적 과제
국제사회 비전 대변해야 실질적 가교 될 것
트럼프 대통령은 초고율 관세정책을 앞세워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약속 위반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11월 10일로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중국 관세 협상도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중국을 겨냥한 총체적 군사 견제를 예고하는 미국의 국방전략(NDS) 문서가 완성됐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틱톡 관련 합의를 포함해 무역, 펜타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사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언급했다. 과연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양국 관계를 재정립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대중 전략은 여전히 명확한 노선과 최종 상태를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전략이다. 첫째, 경쟁국 중국을 유일한 전략적 도전자로 규정하고, 초당적으로 압박하며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 노선이 있다. 둘째, 약화된 미국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관세를 무기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중심 노선이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이해가 존재한다. 그는 세계의 평화 정착자 이미지를 구축하고, 국내 정치적 지위 확립과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려 한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양국 관계뿐만 아니라 향후 국제질서의 진영화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동맹에 대한 강압적 경제·안보정책은 서방 진영 내 분열과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경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한 미국의 리더십이 일정 부분 복원될 수 있다는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중국은 미국의 대중 견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및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러시아, 북한, 이란, 벨라루스 등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반발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특히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새로운 반미 국제질서를 주장한 것과 달리, 중국은 유엔 헌장과 다자주의적 규범을 지키는 모습을 부각했다.
이 가운데 미중 간 틱톡 합의는 양국 무역·기술 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관세, 희토류, 인공지능(AI) 반도체, 농산물, 공급망, 미 기업에 대한 공정 경쟁 보장 등 훨씬 더 큰 의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중 교역 규모는 6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양국 경제는 여전히 상호 의존적이다. 관세 전쟁 속에서 미국은 높은 보복관세와 인플레이션, 내년 중간선거의 부담을 안고 있다. 중국은 대미 수출 감소와 내수 둔화라는 압박 속에서 무역 통제 완화와 투자 환경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에 APEC 정상회의에서는 미중 간 반도체, 희토류, 투자 규제 등 다양한 협상 의제가 다뤄질 수 있다. 동시에 기후변화, 펜타닐 확산 방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등 초국가적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이 시급하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패권을 둘러싼 미중 군사·안보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양국 모두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해도 대만 문제와 동북아 군사·안보 현안은 언제든 악화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경쟁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규범 기반 경쟁이 정착되지 않는 한 군사·안보 긴장을 완화하기는 어렵다.이재명 대통령은 18일 공개된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중 간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협력과 경쟁이 교차하는 가운데 미중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교를 놓을지는 도전적인 과제다. 무엇보다 실리와 비전을 결합한 국제질서에 대한 한국의 담론이 중요하다. 실용외교는 국익을 향상시키면서도 국제질서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 힘을 가진다. 단기적 이익에만 매달리는 외교는 파트너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한국을 단순한 거래 상대로 전락시킬 수 있다.
미중 간 타협과 거래는 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와 국제사회에 새로운 질서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지를 얻기 어렵다. APEC과 같은 다자주의 무대를 주최하는 한국은 강대국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대와 비전을 대변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공급망 회복력, AI 거버넌스, 지속가능성, 혁신, 연결성 등 다양한 의제에서 자국의 이익을 넘어 국제사회의 공익을 도모하는 강대국이 더 큰 지지를 얻는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하반기 외교의 계절에 한국이 미중 양국에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외교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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