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이재명의 베이컨, 트럼프의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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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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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치 입문 전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며 뉴욕시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검사관이 건물에 과태료를 부과해도 끝까지 버텼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은 2024년 출간한 저서 ‘전쟁(War)’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과거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며 그가 버틴 전략적 의도를 소개했다.

“만약 돈을 내면 그들은 계속 온다. 한 달을 버텼더니 ‘내버려둬. 못된 녀석이야’라며 다른 사람에게 갔다. (중략) 검사관, 마피아, 노조(가 다 그렇다). 알겠나.”(트럼프)

우드워드는 “그것이 트럼프의 기본 철학”이라고 했다. 미국이 지금처럼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면 미국을 돕겠다고 나선 동맹국들의 기본 철학도 하나둘씩 그처럼 바뀔지 모른다.

일방적 희생 감수하며 대미 협상 불가능

한국과 미국은 7월 말 관세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한국은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깎아주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정상회담까지 하며 정치적 성과로 포장했지만 한국 자동차 관세는 아직 25%다. 투자 방식을 놓고 현금을 요구하는 미국과 대출과 보증 형태를 주장하는 한국의 이견은 여전하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다.

한국인들은 1997년 달러가 모자라 온 나라가 도탄에 빠진 외환위기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해외 투기 자본이 외환보유액 유동성을 문제 삼아 한국 경제를 공격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 폭락하던 원화를 안정시킨 게 원화를 달러로 바꿔주는 한미 통화스와프였다. 미국이 한국 외환보유액(4162억 달러)의 84%에 이르는 뭉칫돈을 달러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한다면 기축통화국인 일본처럼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안전판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게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거액이 미국 투자 펀드에 묶이면 유사시 가용 외환보유액이 줄어든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해도 미국이 중단하겠다고 하면 한국 경제는 불시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무제한 무기한 한미 통화스와프 없이는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투자하는 게 현실적 해법이다. 만일을 대비해 투자금 회수 조건도 명확히 해야 한다. 미국인이 먹을 아침 식사(제조업 부활)를 함께 준비하자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달걀’(관세 인하)을 줄 테니 이재명 대통령이 ‘베이컨’(3500억 달러 현금 투자)을 내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요즘 한국인의 눈에 비친 한미 관세협상이다. 단순 참여(involvement)와 일방적 희생이 뒤따르는 헌신(commitment)은 다르다. 암탉은 달걀을 또 낳을 수 있어도 돼지는 뱃살을 베어 베이컨을 내놓는 순간 생사의 기로에 선다. 이 대통령이 미국의 투자 요구에 대해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탄핵됐을 것”이라고 한 건 엄살이 아니다.

미 제조업 부활, 한미 ‘헌신의 균형’ 필요

미국의 제조업 붕괴와 중산층 일자리 감소 걱정을 이해하지만 경쟁국 기업 탓만 할 수 없다. 미국의 그 많은 억만장자들과 펀드들은 그동안 왜 자국 제조업 투자를 외면했나. 그럼에도 한국은 인도 호주 싱가포르보다 미국에 더 많이 투자했다. 그런데도 전문직 비자조차 할당받지 못했다. 그 홀대가 조지아주 한국인 기술자 구금 사태로 이어졌다.

한미가 합심해 미 제조업 부활이라는 공동 목표로 나아가려면 우선 한국 기술자들이 미 공사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그러자면 미국에서 비자와 구금 걱정 없이 일할 환경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관세협상에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헌신의 균형’도 맞춰가야 한다. 투자와 이민, 관세 정책이 따로 놀며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나라에서 경제 붕괴와 자국인 구금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아침밥을 차리고 싶은 국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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