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추행 피해자에게 1000억원대의 명예훼손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이어졌다.
미국 뉴욕 관할 연방고등법원 재판부는 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명예훼손 위자료 8330만 달러(약 1155억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결정을 유지한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을 지불하지 않기 위한 대통령 면책권은 주장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지난해 내려진 1심의 배심원단 판결을 지지했다.
캐럴은 1996년 뉴욕 맨해튼의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탈의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2023년 5월 승소했다. 당시 1심 배심원단은 "성폭력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성추행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법원은 500만달러(약 69억원) 배상을 명령했고, 항소심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캐럴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캐럴은 내 타입이 아니다"고 말하는 등 해당 의혹을 부인해 왔다.
캐럴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에 반박하며 그를 상대로 별도의 명예훼손 위자료 지급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캐럴을 상대로 위자료 833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 면책 특권이 있고, 1심 배심원단이 산정한 배상액이 과도하다"면서 항소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만장일치 의견서를 통해 "배심원단이 정당하게 내린 손해배상액은 이 사건의 특별하고도 터무니없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합리적이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면책권을 주장할 권리를 포기했다고 결론지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더 일찍 이 권리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인 저스틴 스미스는 현지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에 "대통령의 면책특권은 포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리치먼드 대학교 법학 교수인 칼 토비아스는 이번 판결이 "상당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정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가디언을 통해 말했다. 토비아스 교수는 이러한 손해배상이 대통령에게 추가적인 명예훼손을 피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법원에 항소를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