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통화 주권만이 아니다. 디지털 통화창출권 및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의 귀속 문제는 더 근본적이고 거대하다. 스테이블 코인 허용이 국가가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행사하는 통화창출 특권을 민간사업자와 나누는 것이나 다름없어서다.
코인 발행사가 스테이블 코인을 찍으면 그 발행액만큼 통화량 증가효과가 생긴다. 코인을 내주고 확보한 현금으로 국채 등 준비자산을 살 때 통화량이 불어나는 구조다. 담보로 잡은 국채가 연 4%대 금리일 경우 이자 수익을 통화발행 시뇨리지로 볼 수 있다. 국가와 사회에 귀속돼야 할 시뇨리지를 민간사업자가 챙긴 셈이다.
이런 구조라면 코인 사업자는 무한정 코인 발행을 통한 무위험수익 극대화의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통화량은 급증하고 경제 전반에 과도한 부채 축적이 불가피하다. 편리함을 택하는 대가로 통화·금융 시스템 위협이 증가하는 셈이다. 편의성이 압도적이라면 선택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스테이블 코인의 용도는 지하경제용이 대부분이어서 용인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적극적이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달러 패권 유지·강화 차원의 거대한 베팅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달러는 공급이 늘어도 바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는 거의 유일한 통화다. 엊그제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졌지만 미국 달러 수요는 더 늘어난 데서 ‘달러 예외주의’의 위상이 재확인된다. 기축통화와 소규모 개방경제하의 원화는 애초부터 비교 불가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급증하고 대중의 수용성이 높아져 화폐처럼 쓰이면 문제는 더 커진다. 코인 발행사는 자금 유입이 없이도 국채를 살 수 있게 된다. 국채 매도자가 현금 대신 코인을 받고도 기꺼이 국채를 넘겨줄 수 있어서다. 코인 사업자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인 발행을 늘릴 것이고 이는 통화량 급증과 시장 교란으로 이어진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창출권을 민간에 부여하는 성격이 큰 만큼 정책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화창출은 사법·국방·치안처럼 주권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공적 서비스라는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통화창출권 민간 이양의 정당성을 매개로 한 달러 코인 반대 의견이 적잖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국채시장 이탈, 재정적자 부담 해소, 달러 리더십 강화 등을 위해 밀어붙였다. 이 결정이 코인에 긍정적인 20~40대 표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스테이블 코인발 위험 관리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백광엽 수석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