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종신 명예감독 별세
1958년 입단 첫해에 신인왕
왕정치와 명콤비로 활약하며
60~70년대 日 시리즈 9연패
日 야구선수 최초 문화훈장도
“태양같이 눈부신 슈퍼스타”
요미우리 그룹 사장도 애도
일본에서 ‘미스터 프로야구’로 불리며 일본 야구계의 전설로 통하는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 명예감독이 3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3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하며 나가시마 감독이 이날 새벽 폐렴으로 사망한 소식을 전했다.
나가시마 감독은 일본 프로 스포츠 사상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인물로, 현역 시절은 물론 지금도 일본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가 몸담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구단으로, 일본에서는 흔히 ‘쿄진(巨人)’이라는 애칭으로 통용된다.
1936년 지바현 사쿠라시에서 태어난 나가시마 감독은 1958년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데뷔전에서 그는 재일교포 2세이자 400승 투수인 가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와 상대해 4연타석 삼진을 당하기도 했지만 빠르게 적응해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다. 입단 첫 해 타점왕과 홈런왕을 따내며 신인왕을 거머쥔 그는 이듬해 일왕이 관전하는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치는 등 큰 경기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한해 늦게 자이언츠에 입단한 오 사다하루(왕정치·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 회장) 와는 ‘ON’(오 사다하루의 O와 나가시마의 N을 합친 용어)으로 불리는 명콤비로 자이언츠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자이언츠는 이들 콤비를 앞세워 1960∼70년대 전무후무한 일본 시리즈 9차례 연속 제패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 통산 17시즌 동안 타율 0.305, 444홈런, 1522타점으로 6차례 타격왕과 5차례 MVP를 차지했다. 1974년 “저는 오늘 은퇴하지만, 쿄진군(요미우리 자이언츠)은 영원불멸”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자이언츠는 그의 등번호 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은퇴후 자이언츠 감독에 취임해 5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일군 뒤, 2001년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종신 명예감독으로 추대됐다.
2003년 아테네올림픽 때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이듬해 뇌졸중이 발병하면서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전 감독이 2006년 자이언츠에 입단했을 당시 나가시마 감독이 한때 썼던 등번호 33번을 물려받기도 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2013년 자이언츠 시절 제자였던 마쓰이 히데키와 함께 국민 영예상을 받았다. 2021년 도쿄올림픽 때는 오 사다하루와 함께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같은 해 일본에서 야구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일본에서 나가시마 감독이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건 그가 1960∼70년대 일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과도 무관치 않다.
당시 일본 국민은 일과를 마치고 야구 경기를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는데, 당시 자이언츠가 누린 인기와 위상은 미국 뉴욕 양키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해외 어떤 명문 구단보다도 공고했다. 시대적 감성을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의 별세 소식에 야마구치 도시카즈 요미우리그룹 사장은 “불타는 남자의 승부욕과 태양 같은 눈부심이 있었고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상징하는 슈퍼스타이자 야구계를 견인했던 미스터 프로야구” 이라며 애도했다.
야구계 후배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현재 일본 최고 스타로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소속 오타니 쇼헤이는 SNS에 나가시마 감독과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오타니는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메이저 리그 개막전 당시 도쿄돔을 찾은 나가시마 감독과 만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