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안에 반대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작년 대선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하며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으로 떠오른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 간 관계가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틀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틀어진 머스크
머스크는 5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여러분은 새 정당을 원하며 그것을 갖게 될 것”이라며 “오늘 아메리카당이 결성되며 여러분의 자유를 되찾을 것”이라고 썼다. 이어 “낭비와 부패로 미국을 파산시키는 일을 말하자면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당제에 살고 있다”고 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낭비, 부패로 나라를 파산시키는 데선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전날 창당에 관한 찬반을 묻는 온라인 투표를 X에 띄웠다. 이 온라인 투표에선 찬성 65%, 반대 35%가 나왔다.
머스크는 한때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혔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았다. 이런 둘 사이에 틈이 생긴 결정적 계기로는 이른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으로 불리는 트럼프 감세안이 꼽힌다. 머스크가 X에서 신당 창당 입장을 밝힌 날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를 통과한 감세안에 서명한 다음 날이다.
머스크는 지난달부터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드러냈다. 감세안을 “역겹고 혐오스러운 괴물”이라고 부르며 “이미 거대한 재정적자를 훨씬 더 늘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때 꼬리를 내리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이 봉합되나 싶었지만 신당 창당으로 둘 사이는 결정적으로 벌어졌다.
트럼프 감세법에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폐지하는 조항이 담긴 게 둘을 틀어지게 만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과 한창 친하게 지낼 때도 트럼프 감세안에는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폐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캐스팅보트 노리지만
머스크는 X에 올린 글에서 “이것(신당 창당)을 실행하는 한 가지 방법은 상원 의석 2∼3석과 하원 선거구 8∼10곳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매우 근소한 의석수 차이를 고려할 때 그것은 논쟁적 법안에 결정적인 표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며 진정한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도록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박빙’ 우세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11월 중간선거 때 상원 3분의 1과 하원 전체가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 이때 선전하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히 맞서는 법안에서 제3당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머스크의 구상이다. 하지만 신당을 창당하고 성공시키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머스크가 신당에 관한 계획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지는 불분명하다. 뉴욕타임스는 “머스크는 최근 지인과 정당 창당 및 실행 계획을 논의했으며 그 대화는 현실적이라기보다 개념적 수준에 가까웠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제도 여건도 만만치 않다. 신당 등록과 관련한 요건이 주마다 다르고 일부 주에선 지역 주민의 서명 청원을 받아야 한다. CBS는 미국에서 새로운 전국 정당을 세우는 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조차 벅찬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