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코스피의 밸류에이션이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주가 하락의 배경이 된 인공지능(AI) 투자 둔화와 반도체 이익 감소 우려는 과도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빅테크 기업의 AI 투자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투자 주체가 네오클라우드와 사모펀드, 채권시장 등으로 넓어지고 있어 AI 인프라 사이클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4일 보고서에서 “현재 코스피는 기업이익에 대한 신뢰 저하와 주식을 사줄 수급 주체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반영된 상태”라며 “적어도 이익 전망에 대한 불신은 미국 빅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를 거치며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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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메리츠증권) |
지난 13일 종가 기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5.8배로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쟁이나 경기침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올해와 내년 코스피 순이익 전망치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높아졌지만, 시장에서는 현재 예상된 이익이 실제로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수급 환경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스피 거래량은 지난 3월 고점 이후 연초 수준으로 감소했고, 거래대금도 6월 초를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코스피 외국인 지분율은 지난달 25일 40.7%에서 이달 13일 38.8%로 낮아졌다. 외국인 매도를 단순한 차익실현으로 보기 어려워지면서 ‘누가 한국 주식을 사줄 것인가’라는 우려가 커진 셈이다.
다만 메리츠증권은 주도주 실적과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실제 산업 흐름보다 앞서 나갔다고 평가했다. 시장 불안의 출발점이 된 메타의 데이터센터 컴퓨팅 자원 외부 판매도 AI 설비의 과잉 공급이 아니라 구형과 신형 컴퓨팅 자원을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메타는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주 하이페리온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를 기존 270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확대했다. 완공 시 전력 용량 5기가와트(GW) 규모의 메타 사상 최대 데이터센터가 될 전망이다.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한 외부 자금과 주 정부의 세제 혜택을 활용하면서 자체 현금흐름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구조다.
AI 투자에 대한 수익화도 시작됐다. 메타는 자체 개발 AI 모델을 외부 개발자에게 제공하고 토큰 사용량에 따라 이용료를 받는 사업에 나섰다. 기존에는 AI 투자가 내부 광고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매출을 창출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황 연구원은 AI 모델 경쟁이 소수 기업의 승자독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기업들이 AI 모델을 외부에 판매하지 못하더라도 내부에서 사용할 토큰을 직접 생산하면 외부 모델을 구매하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증권은 구글의 내부 토큰 사용량을 기준으로 자체 모델과 토큰을 개발할 때 연간 20억~50억달러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주체가 빅테크 밖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반도체 사이클 연장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았다. 초기에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빅테크가 선제적으로 설비를 구축했지만,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이 확인되면서 네오클라우드와 코로케이션 사업자, 합작법인, 사모펀드 등이 계약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에서 하이퍼스케일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지고, AI 클라우드와 산업·기업 고객의 비중은 높아지는 추세다. 특정 빅테크 기업이 투자를 줄이더라도 다른 사업자가 설비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 연구원은 “메모리 장기공급계약이 단기적으로 가격 상승 폭을 제한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근거로 반도체 이익과 AI 인프라 사이클 전체를 의심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빅테크 실적을 통해 이익 신뢰가 회복되면 코스피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낮다는 인식도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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