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아이들을 품은 '우주적 대모'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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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30 00:38 수정2025.05.30 00:38

가진 것
한성례

몽골의 초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가능한 한 덜고 버리고서 빠드득 물기 마른 지평선 한 자락 몰고 올라가 산뜻하게 걸린 무지개처럼 정말이지 몸이 가벼워지는 것. 지구라는 행성에 나란히 동거하면서도 우린 서로 가진 것이 달랐지요. 몇 마리의 양과 말, 한나절이면 거뜬히 접어 길 떠나, 발 닿으면 다시 세우는 서너 평 남짓한 ‘겔’. 고작 그 안을 채울 만큼이 온 가족이 가진 것 전부. 그러기에 몽골의 유목민들에게는 짙푸른 하늘과 끝없는 초원, 머리 위로 열리는 밤하늘의 수박만 한 별들, 이 모두가 다 그들 차지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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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아이들을 품은 ‘우주적 대모’ [고두현의 아침 시편]

한성례 시인을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주적 대모(代母)’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혼자 살면서도 키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우주적 대모’라는 멋진 수식어를 붙여준 김영산 시인의 얘기를 잠깐 들어볼까요.

‘어느 해 여름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는데 중고차 한 대가 옆에 와 섰다. 차창이 열리고 “잘 지내지?” “네……” 짧은 대화 속에 차가 떠났다. 그 안에 아이들이 네다섯 명 타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녀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보다 더한 우주적 사랑으로 한껏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 풍경은 한 폭의 거룩한 성화(聖畵)와 같았다.’

한성례 시인은 그날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누구였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소년 소녀를 거두어서 학교에 보내고 취업과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물어보면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입을 다뭅니다. 그의 고향 집 아버지가 헐벗은 사람들에게 논밭을 나눠주고 공동체 생활을 했던 집안 내력 때문일까요. 이 같은 ‘우주적 대모’의 풍모는 그가 살아온 이력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앙전신전화국에 취직했고 서울체신청과 한국통신(KT) 등에서 25년간 ‘미친 듯이 열심히’ 근무한 뒤 퇴직했습니다. 한국통신이 체신부를 떠나 공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마케팅대상 등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자 첫해부터 거의 매년 상을 휩쓸었지요. 연봉도 억대로 뛰었습니다.

다른 민간 통신회사들이 많이 생기면서 수억 원대 연봉에 스타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하고 1999년에 명예퇴직을 결행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오로지 문학에 매진하기 위해서’였지요.

한국통신 재직 중 세종대에 일문과 야간 과정이 생기자 입학해 1학년 때 세종문학상 시 부문에 장원으로 당선됐습니다. 졸업 직후인 1986년 《시와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198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지큐(地球)의 시제(詩祭’)’에 참가한 이후 1990년 서울 세계시인대회, 1993년 서울 아시아시인대회를 거치면서 많은 외국 시인과 교류하며 통·번역 일을 겸했습니다. 그동안 번역한 시집과 소설 등이 200권을 넘고, 한국 시인 200명 이상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본어 시집까지 여러 권 출간했으며 일본의 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 문학지에 일본 시를 번역해 싣고, 일본 문학지에 한국 시를 번역해 싣는 일로 보냈습니다. 그는 “번역은 나에게 또 다른 글쓰기의 세계이자 시의 번개를 감지할 수 있는 피뢰침 역할을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릴 때 방 천장이나 벽에 좋아하는 시를 써 붙여놓고 난 언제 저런 시를 쓰나 하고 고민하며 자랐다”며 “시 쓰는 게 힘들 때면 두보 시의 한 구절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시를 쓰지 못하면 죽어도 쉬지 않겠다(語不驚人死不休·어불경인사불휴)’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에게 문학은 지구라는 행성을 넘어 태양계와 은하, 그 너머의 수많은 별무리를 한꺼번에 껴안는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그 품 안에는 해맑은 아이들과 번개 같은 시와 피뢰침 같은 통·번역의 세계가 다 들어 있습니다. 품이 너른 만큼 ‘가진 것’도 많습니다.

그런 ‘어머니 품’은 모든 것을 보듬어 안으면서 또한 모든 것을 비울 줄도 압니다. ‘가진 것’이라는 시에 나오듯이 몽골 초원 한복판에서 ‘가능한 한 덜고 버리고서 빠드득 물기 마른 지평선 한 자락 몰고 올라가 산뜻하게 걸린 무지개처럼’ 가벼워지기를 꿈꿉니다.

그럴 때 그는 유목민과 한 몸이 됩니다. ‘짙푸른 하늘과 끝없는 초원, 머리 위로 열리는 밤하늘의 수박만 한 별들’을 다 가진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 그 유목민의 후예 중에는 그가 남몰래 키우고 보살핀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가 잘 자라서 벌써 성년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또 미래의 아이를 보살피는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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