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10〉

3 hours ago 3

없었을 거라고 짐작하겠지만
집 앞에서 다섯 시간 삼십 분을
기다린 남자가
제게도 있었답니다

데이트 끝내고 집에 바래다주면
집으로 들어간 척 옷 갈아입고
다른 남자 만나러 간 일이 제게도
있었답니다

죽어 버리겠다고 한 남자도

물론 죽여 버리고 싶은 남자도

믿기지 않겠지만

―김경미(1959∼ )


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돋아나는 한때를 자기 시절로 삼는 사람들은 청춘을 모른다. 당연하지 않은가. 청춘은 지나고 난 뒤,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아, 그때 내가 청춘이었구나! 힘이 빠졌을 때에야 천하장사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화자는 고백한다. “없었을 거라 짐작하겠지만”, 이쪽의 판단을 미리 판단하며 농담과 자조를 섞어 말한다. 푸릇푸릇한 청춘이 자신에게도 있었노라고. “집 앞에서 다섯 시간 삼십 분을/기다린 남자”가, 데이트가 끝나고 또 다른 상대를 만나러 가던 시간이, 나로 인해 죽겠다는 남자와 자신이 죽이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장난처럼 털어놓은 고백의 끝에는 “믿기지 않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놓아두는데, 시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이 단서가 이 시의 매력을 만든다. 지금은 청춘에서 멀리 와버렸음을 상기시키는 세련된 장치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머리카락이 윤이 나서 잘라줄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던, 좀 특이한 미용사 앞에 앉은 스무 살이 필자에게도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피부가 땅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늙음’은 숱한 기회에서 조금씩 배제되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 청춘들이 지나간다. 시간을 휘저으며 간다. 지금은 아무리 가도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겠지만 글쎄, 계절은 언제나 다음 계절을 불러온다. 쓸쓸하게도.

박연준 시인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