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필수의료 해법으로 ‘병원 간 빅딜’은 어떤가

4 hours ago 6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전공의들이 복귀했고 의정 갈등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필수, 지역 의료의 고사 위기라는 현실은 바뀐 것이 없다. 전공의들은 응급실, 수술실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으로도 가지 않았다.

당정 논의대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든, 공공의료사관학교를 설립하든 의사가 배출되려면 지금부터 10년은 걸린다. 그동안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환자가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복권 당첨만큼 희박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 대책에는 당장 필수, 지역 의료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무한 경쟁에 장비 과잉-의사 고용 기피

우리나라 병원의 95%는 민간병원이다. 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 아래서 민간병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덕분에 한국 의료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런 구조가 한계에 달했다고 본다. 병원 간 과잉 경쟁으로 의료 자원이 심각하게 낭비되고 있다.

건보는 진료의 질보다는 양이 많을수록 수익이 나도록 설계돼 있다. 병원마다 수십 개 진료 과목을 운영하고, 최신 의료 장비를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는 인구 100만 명당 38.7대,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는 45.3대로 각각 OECD 평균 대비 1.8배, 1.4배에 달했다. 암 치료를 위한 중입자 가속기는 전 세계 14기 남짓인데 우리나라에만 3기가 있다.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6개로 OECD 평균의 3배다. 환자 1명을 두고 동네의원, 전문병원, 상급종합병원이 무한 경쟁을 벌이면서 병상, 장비 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진 탓이다.

최근 병원 간 무한 경쟁 구조를 바꿔 필수 의료 의사 부족을 해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A병원에 뇌혈관센터, B병원에 심혈관센터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의사가 부족한 필수 의료 진료 과목에 ‘규모의 경제’를 도입하면 응급실 뺑뺑이 같은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과잉 투자를 해소해 산업 경쟁력을 키웠던 ‘기업 간 빅딜’처럼 ‘병원 간 빅딜’을 하자는 것이다.

뇌혈관 전문의 몰아주는 ‘규모의 경제’ 3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인데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했다. 뇌혈관 전문의가 2명뿐인데 마침 1명은 해외 학회, 1명은 지방 출장 중이었다. 서울 주요 대형 병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강북권역의 상급종합병원 4곳의 뇌혈관 전문의를 A병원 뇌혈관센터로 모아보자. 전문의 10명이 당직을 돌면 ‘워라밸’ 확보가 되니 전문의 수급이 수월해진다. 하 교수는 “보상이 적은 것을 알고도 그 과목을 선택한 사람들이니 주 60∼70시간만 일한다면 올 것”이라고 했다. 고가 검사, 치료 장비를 병원마다 중복 투자할 이유도 없다. 각 병원이 한 해 200번씩 하던 수술을 센터 1곳으로 몰면 800번이 된다. 투자 비용 회수가 빨라진다. 임상이 축적되므로 숙련된 의사 양성도 된다.

지역 의료 공백의 해법도 될 수 있다. 대구에는 상급종합병원 5곳이 있지만 뇌혈관 전문의가 있는 곳이 드물다. 그런데 포항 전문병원에는 10여 명이 근무 중이다. 경직된 행정체계가 아니라 질병의 발병률, 이송 가능 시간을 따져 질병 권역으로 묶어 필수 의료 특화센터를 만들자는 것이다. 수천억 원을 들여 공공병원을 새로 짓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정부가 병원 간, 의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민간병원에 개입한다는 부담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의료 시스템을 협력의 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정부, 병원, 의사, 환자 모두 패자가 될 상황이다. 지금까지 필수, 지역 의료 대책은 예산은 흩어지고 효과는 없었다. 관성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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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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