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보미]스타 이름값보다 빛난 해리 스타일스의 ‘서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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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영국 출신의 세계적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31)는 지난달 베를린 마라톤에서 ‘서브3’를 달성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서브3’는 마스터스 러너들에겐 ‘꿈의 기록’으로 통한다. 3월 도쿄 마라톤 때 처음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24분7초에 완주했던 스타일스는 베를린에서 2시간59분13초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스타일스가 그날 입고 뛴 러닝 팬츠에도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 브랜드 제품인 이 팬츠는 베를린 마라톤 이후 판매량이 50% 넘게 늘었다. 러너들이 이 팬츠에 열광한 건 단지 ‘스타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일스는 도쿄 마라톤 때도 이 팬츠를 입고 뛰었다. 이 브랜드가 대대적 홍보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브랜드 창립자조차 ‘너네 제품 아니냐’고 지인들이 알려준 덕에 스타일스가 자사 팬츠를 입고 뛴 사실을 알게 될 정도였다. 같은 사람이 같은 팬츠를 입고 풀코스를 뛰었는데 유독 이번에만 불티나게 팔린 것이다.

‘풀코스 완주자’ 스타일스와 ‘서브3 달성자’ 스타일스를 대하는 러너들의 온도 차가 극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브3를 하려면 1km를 최소 4분 15초에 달려야 한다. ‘4분 16초는 안 되냐’고 묻는다면 답은 ‘절대 불가’다. 1km당 두세 걸음 차이지만 완주 기록은 3시간1초92가 된다. 1km당 4분 15초 페이스는 시속 약 14.12km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페달을 부지런히 밟아야 나오는 속도다. 따릉이를 탄 사람과 3시간 내내 나란히 뛰어야 ‘서브3’가 가능하다.

누구나 꾸준히만 뛰면 3시간대 풀코스 완주는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서브3는 10년을 뛰어도 달성하기 힘든 벽이다. 그런데 스타일스는 6개월 만에 풀코스 기록을 25분 가까이 줄였다. 러너들이 줄지어 팬츠를 따라 살 만큼 동경할 만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열광한 대상은 ‘팝스타’ 스타일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을 흘렸을 ‘러너’ 스타일스였다.

따지고 보면 서브3를 위해 필요한 그 ‘각고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별것 아닌 일’이다. 결국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야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별거 아닌 일도 쉼 없이 반복하는 게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풀코스 완주가 불가능한 일인 이유이기도 하다.

잠깐의 전력 질주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열정만 앞선 오버페이스는 ‘중도 포기(DNF·Did Not Finish)’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쌓아야만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결승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계속 달리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다. 이를 얻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내 실력에 맞는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거나, 내가 원하는 페이스에 맞는 실력을 쌓거나.

시작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제아무리 ‘마라톤 영웅’ 황영조(55)라도 일단 출발선에 나타나지 않으면 1km도 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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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스포츠부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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