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포위는 서양 역사상 가장 길고 파괴적인 포위전이었다. 2년 반 동안 굶주림, 폭격, 추위로 백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히틀러 나치의 침략군과 스탈린의 소비에트 독재로부터 압박을 받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용기를 내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한다. 이 곡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세계로 전달돼 연주되면서 전쟁의 참상을 알렸고 연합국 동맹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클래식과 전쟁사> 속 문장을 읽다 보면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명곡을 듣고 싶어진다. 책 귀퉁이에 마련된 QR코드는 이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어 유용하다.
전쟁사를 읽으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책 <클래식과 전쟁사>는 중세시대,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파 음악가들이 남긴 전쟁과 관련한 곡을 소개한다. 중세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교향곡과 소나타, 협주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이 이 책에 담겼다. 11세기 십자군 전쟁부터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 주요 전쟁사를 다루면서 작곡가의 상황과 심정을 전달하고 초연 악보를 싣는 데도 충실을 기한 책이다. 평생을 군에서 보낸 저자 서천규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전쟁이 발생하게 된 전후 사정과 작전 계획, 전투 장면도 사료로 활용했다.
실제로 잔혹한 전쟁은 수많은 예술적 영감의 요람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 전쟁통에도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 등은 예술가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고 탐구심을 불어넣는 데 탁월한 소재여서다. 승리의 찬가, 전쟁의 참상 속에서 생명과 가족애, 희망과 사랑, 인류애와 평화 등을 다룬 음악과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곡 등 이 책에 실린 클래식 음악만 익혀도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음악 감상이 가능해질 것 같다.
지금도 지구촌 도처에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저자는 인류애를 회복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클래식 음악이 꼭 필요하다고 책에서 말한다. 그는 “전쟁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수많은 전리(戰理)를 일깨워 준다”며 “클래식 음악에는 선율과 감동이 있고 전쟁사에는 역사와 교훈이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