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출신 50대 남성
SUV 차량 몰아 군중 수백명 덮쳐
5명 사망자 중 1명은 9세 어린이
부상자 200여명에 인근 병원 꽉 차
‘반 이슬람’ 주의자…SNS 활발 활동
2016년 트럭 돌진 후 또다시 비극
자신의 BMW SUV에 탄 50대 남성은 20일(현지시간) 저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만한 장소로 자신의 차를 몰았습니다. 오는 25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이었습니다. 해당 마켓은 보안 등의 이유로 차량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남성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구급차 진입용으로 마련된 갓길을 이용해 마켓 중심부로 진입했습니다. 눈 앞에는 한껏 끌어오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마켓을 찾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남성은 이때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오른발로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독일 동부 도시 마그데부르크에 마련된 크리스마스 마켓이었습니다. 모두의 축제였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순간에 악몽으로 돌변했습니다. 급가속으로 속도가 붙은 차량은 이내 수백명이 밀집해 있던 마켓 중심부를 덮쳤습니다. 운전자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차량으로 마켓에 돌진한 남성이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목표를 달성한 남성은 광장 반대편에 있는 통로를 통해 탈출하려고 했지만 교통 체증에 막혀 결국 도주에는 실패했습니다. 독일 경찰은 재빨리 차량을 포위한 뒤 남성을 차에서 끌어내고 체포했습니다.
이날 남성의 차가 마켓으로 돌진하면서 23일 기준 5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망자는 성인 4명과 9살 어린이 1명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0여명에 달하는 부상자 중 41명은 부상 정도가 매우 심각해 독일 정부는 수일 내 추가 사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부상자 수가 너무 많아 이들을 다 수용할 병상이 부족해 일부는 다른 주에 위치한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어야 할 주말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 남성의 계획 범죄로 순식간에 비극이 됐습니다.
남성의 이번 범행은 경기 침체, 일자리 감축,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 부결 등으로 혼란스러운 한 해를 겪어야 했던 독일 국민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와 평화를 한순간에 파괴했습니다. 21일 오전 마켓을 방문한 한 주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평화로워야 할 크리스마스가 잔인한 범죄로 망가졌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습니다.
마그데부르크시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용의자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탈렙 알압둘모센(50)을 지목했습니다. 독일 검찰은 현재 5건의 살인 혐의와 200건 이상의 살인미수 혐의로 용의자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이번 사건을 용의자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독일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마그데부르크에서 약 40㎞ 떨어진 베른부르크에서 거주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용의자가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 정신과 및 심리치료 전문의로 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용의자는 평소 ‘반(反) 이슬람 성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평소 독일 정부의 관대한 이슬람 포용 정책을 비판해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는 또 반 이민 정책을 강조하는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이슬람 관용법이 독일에서 시행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정치인들의 글을 SNS에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가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6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베를린 중심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으로 돌진해 13명이 사망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3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는 칼부림 사건이 벌어지면서 독일 정부는 보안 강화에 나섰습니다. 거리 축제와 시장 등으로의 차량 출입을 막기 위한 구조물과 보안카메라 설치가 추진됐고, 더 많은 경찰관을 배치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마그데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이 같은 구조물이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용의자는 구급차 이동용으로 마련된 통로를 범죄의 창구로 활용했습니다. 마그데부르크의 한 시의원은 “당시 마켓 방문자들을 위한 보안은 충분했다”며 “용의자가 구급차를 위해 따로 마련된 갓길을 범행 통로로 악용하는 것까지 막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마그데부르크 거리는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에 눈물을 쏟으며 통곡하는 이들도 다수였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마켓 인근에 위치한 교회 계단에는 피해자들을 추모하고자 하는 수백명 시민들의 꽃다발이 하루 종일 쌓였습니다.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서 진행된 추모 미사에는 숄츠 총리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사건 현장을 찾은 숄츠 총리는 “나라 전체가 함께 애도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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