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기억, 끝낼 수 없는 사랑

5 days ago 13

[한시를 영화로 읊다]〈139〉대신 쓴 편지(2)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오른쪽)은 연인 클레먼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라쿠나 회사와 계약하지만 결국 헤어진 연인과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롯데컬처웍스 제공 남모를 사랑의 고통을 대신 쓴 편지로 표현한 한시들이 있다(칼럼 106회 참조).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년)의 제목이 유래한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가 알렉산더 포프가 실존 인물을 대변해 쓴 것처럼, 당나라 이백의 다음 시도 여성을 대신하여 쓴 편지다. 시는 멀리 떠나 소식도 없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마음을 읊었다. 생략된 부분에는 변방에 출정한 남편이 다시 돌아오겠노라 달콤한 약속은 했지만, 변방의 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신은 기억조차 못 할까 걱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에서 눈길을 끄는 구절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비단에 수놓은 회문시(回文詩)의 고사와 곡진하게 연결시킨 표현이다. 회문시는 전진(前秦) 시기 소혜(蘇蕙)가 자신을 두고 떠난 남편 두도(竇滔)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어느 방향으로 돌려 읽어도 시가 되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회문시의 순환성은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는 모티프로 마지막 내용이 다시 처음으로 연결되는 ‘이터널 선샤인’의 구조와도 닮아 있다. 영화는 조엘이 클레먼타인을 몬탁행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사실 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내용이기도 하다. 시 역시 원정(遠征)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부인의 마음을 색다른 구성과 표현 방식으로 풀어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전개되던 시는 읽어주지 않을까 두려워 썼던 편지를 태워버리겠다는 말로 마무리되며 사랑의 고통을 부각시킨다. 영화에선 사랑의 아픈 기억을 지우려는 주인공 남녀 간의 엇갈린 사랑이 독특한 비선형적 내러티브로 펼쳐진다. 사랑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자기 부정과 파국을 야기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조엘은 자신의 기억을 지운 연인 클레먼타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라쿠나 회사와 기억을 지우기로 계약한다. 한시 속 아내는 자신을 잊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편지를 태워버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조엘과 클레먼타인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한시 속 아내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거두지 못한다. 편지를 태우겠다는 다짐도, 기억을 지우겠다는 계약도 사랑의 고통을 없애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도리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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