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1위’ 韓, 캐나다의 예방 시스템에서 배워야[기고/이재헌]

12 hours ago 1

이재헌 캐나다 웨스턴대 슐릭의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재헌 캐나다 웨스턴대 슐릭의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자살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중대한 과제로 규정하며 예방 시스템 강화를 강조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한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련을 받은 뒤 대학병원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에서 임상교수 및 센터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캐나다 의대에서 레지던트와 의대생을 가르치며 의사로서 환자 진료도 보고 있다. 그동안 양국의 시스템을 비교하며 한국의 자살 예방 정책이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어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왔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정신건강 서비스 간의 유기적 연계다.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은 병원, 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사회복지기관이 각각 따로 분리돼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자살 고위험군 환자의 경우 환자의 동의하에 사례 관리 정보가 병원과 각 기관에 실시간으로 공유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례 관리자와 같은 최일선 실무 종사자의 권한과 역할이 인정받고 확대돼야 한다.

캐나다에선 ‘상호환자(mutualpatient)’라는 용어가 흔하게 사용된다. 하나의 기관만이 아닌 여러 기관이 함께 책임지고 돌보는 환자라는 인식이다. 단일 기관의 권위가 아닌, 각 기관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공유하는 ‘공동 돌봄’에 기반한 팀 기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학제 협업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자살 예방에 있어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간호사 등 다양한 전문가가 함께 접근하는 협업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캐나다에서는 다학제 회진과 사례회의도 공식 진료로 인정된다. 진료와 동일한 수준의 보상이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의 현행 수가 체계에서는 이러한 협업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한국 역시 실질적인 다학제 기반의 개입과 치료, 예방을 가능케 하는 별도수가나 인력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긴급입원 평가제도 역시 보다 간소화되고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 한국에선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 현장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제도의 복잡함 때문에 실제로 긴급입원을 신청하지 못한 적이 있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의사가 위험성을 판단하면 경찰과 구급대원이 협력해 응급입원이 빠르게 이뤄진다. 누구든 위험 징후를 감지하면 긴급평가를 의뢰할 수 있도록 체계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후 법적 승인을 통해 응급 평가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교육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북미와 비교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이 높다. 정신건강을 ‘개인의 약함’이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주도의 대중 캠페인과 학교, 직장에서의 정기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 이 대통령의 자살 예방 정책 수립에 대한 반복된 의지 표명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러한 정책적 의지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병원과 지역사회가 보다 긴밀히 연결되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력하며 위기상황에 신속히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자살률 감소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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