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최저임금조차 부러운 진짜 약자들

13 hours ago 4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이상훈 정책사회부장
#1. 네이버에서 ‘쿠팡’을 검색하면 쇼핑몰이 뜨지만, 유튜브에서 같은 단어를 치면 쿠팡 플렉스 배달 후기 동영상이 나온다. 3개월 전 올라온 동영상 속 유튜버는 1시간 40분간 17개를 배달해 1만7370원을 벌었다고 했다. 기름값을 빼면 시간당 8000원도 못 번 셈이다. 배달의민족 라이더, 일반 택배회사 근로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도급 근로자, 특수형태근로 플랫폼 종사자(특고)다.

#2. 기자가 사는 경기도 한 아파트 상가 커피숍이 지난주 문을 닫았다. 커피가 맛있고 서비스도 친절해 손님이 적지 않았던 곳이다. 몇 달 전 한숨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16.5㎡ 월세만 200만 원이에요. 관리비 50만 원에 전기료, 인터넷비, 포스비는 별도고요. 기계 렌털료에 원두값, 종이컵값까지….” ‘남는 것 없다’는 말을 앓는 소리로 생각했는데, 휑뎅그렁하게 문 닫은 가게를 보고서야 처참한 자영업자 현실을 실감했다.

제도 밖에 내몰린 ‘진짜 약자’

배달 라이더와 문 닫은 커피숍 사장이 최근에 막판 기싸움을 거듭하는 최저임금위원회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올 상반기(1∼6월) 소비자물가 누계 상승률이 2.1%라며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 측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8%라며 최소 수준 인상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은 라이더와 사장을 대표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이 보호해야 할 ‘진짜 약자’들은 제도 바깥에 서 있거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사업장에서 고통받고 있다.

한국 최저임금 논의는 문재인 정권 때부터 정치적 이해관계로 뒤틀렸다. 애초 최저임금이 정치적 제도이고 사회적 타협의 산물이라지만 2018년, 2019년 2년간의 29.1% 최저임금 인상은 그 어떤 경제적 이론과 사회적 논의로 설명할 수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라진 일자리는 무인 가게, 태블릿 주문 기계로 대체된 지 오래다.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 실패 이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률을 관리하고 있다고 해도, 시간당 1만 원이 넘은 현실에서 밑바닥 일자리가 살아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높아진 최저임금은 초저금리, 정부 재정 확대와 맞물려 물가를 자극하는 3중 압력이 됐다. 인플레이션은 소상공인 생존을 위협하고, 임금 인상을 압박해 최저임금을 다시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 소비 여력을 높여준다고 해도 경기가 살아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최저임금은 이달 중 노동계와 경영계가 각각 요구한 시간당 1만1020원과 1만150원 사이 어딘가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래 봤자 시간급 개념조차 적용되지 않는 도급, 특고 노동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60%를 넘는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높고, 전체 근로자의 20%가 최저임금에 묶이는 ‘임금 상한선’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영업자 10명 중 3명이 월평균 최저임금(약 209만 원)도 못 벌어 밤새 가게를 지켜야 하는 현실도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 아르바이트생 채용은커녕 쌓인 대출 때문에 폐업하고 싶어도 못 하고,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계와 로봇이 대체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지속 가능한 제도인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새 정부, 최저임금 바로잡을 고민해야

최저임금은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 돼야 한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보호하지 못한 채 사회 전체 비용과 갈등만 키우는 현행 방식은 재설계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매년 반복되는 퍼포먼스 같은 줄다리기가 아니라, 제도가 보호해야 할 진짜 약자를 명확하게 구해 주는 정밀한 수술이다. 약자는 보호하지 못하고 물가만 자극하는 ‘거꾸로 최저임금’은 바뀌어야 한다. 새 정부가 ‘거꾸로 최저임금’을 바로잡을 고민과 대안을 가졌는지, 벼랑 끝에 선 약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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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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