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전시장에서 열린 개원 박람회가 개업을 준비 중인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특히 보톡스 주사, 항노화 수액, 체외충격파 치료 등 미용과 정형외과 관련 실무 강의는 강연장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피부미용과 비만 관련 강좌 등 의료 소송 위험은 적고 보험 적용이 안 돼 돈이 되는 진료 분야의 강연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풍경이다.
의사들의 개원가 쏠림은 수련병원 교수와 개원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면서 시작된 현상이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과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가속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일반의가 개업한 의원은 759곳으로 5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련병원을 떠나 재취업한 전공의도 10명 중 6명꼴로 피부과 등 일반 의원에 몰렸다. 전공의 사퇴로 격무에 시달리던 대학병원 교수들도 증원된 의대생이 쏟아지기 전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개원가로 뛰어들고 있다. 필수 의료 살리겠다며 시작한 의료 개혁이 의대 증원 2000명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미용 의료 시장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1년 7개월째로 접어든 의정 갈등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러 가지 국가적 현안 중 제일 자신 없는 분야”라고 할 정도로 수습 난망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신규 의사 배출이 2년째 끊기다시피 했고, 수술이 지연되고 있으며, 의료인력 양성 체계도 망가진 상태다. 우선 수련병원에서 필수 의료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전공의들을 복귀시키고, 의대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응급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필수 의료 고사 현상은 한국 의료 체계가 10년 넘게 앓고 있는 만성질환이다. 2028년까지 심장이나 폐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 196명이 은퇴하는데 새로 배출될 전문의는 12명밖에 안 된다. 소아외과도 대가 끊길 판이고, 몇 안 남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가가 낮고 의료사고 위험이 큰 분만을 하지 않는다. 고난도 진료를 할수록 적자를 보는 왜곡된 수가 체계를 바로잡고,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도록 소송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이해관계 조율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 같은 고질적 문제를 방치한다면 개원가로 몰리는 젊은 의사들의 발길을 돌려놓기 어렵다.-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