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이종범 전 코치의 퇴단 문제로 시끄럽다. 프로야구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호타준족으로 경기장을 휘저었던 전설 같은 존재였다. 아직도 회자되는 ‘야구는 이종범처럼’이라는 말은 그 이름이 떨쳤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KT 위즈의 코치였던 그는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의 감독직을 맡기 위해 최근 코치직을 그만두었다. 그는 “야구의 흥행과 저변 확대”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순위 싸움이 한창인 시즌 도중 팀을 떠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수많은 팬들의 신뢰를 저버린 시즌 중 퇴단이 과연 그가 내세운 명분에 합당한 일인가라는 비판이 거세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나는 실제적 이유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가는 것이 주목도와 수입 측면에서 더 낫기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개인적 실리를 위해 무리하게 시즌 중 퇴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거포이자 ‘국민 타자’로 불렸던 이승엽 두산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지도자 경력 없이 2023시즌을 앞두고 파격적으로 감독에 발탁됐던 이승엽은 그러나 올 시즌 바닥권인 성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스스로 물러났다.한국 프로야구의 가장 화려했던 전설 두 명이 한 달여를 사이에 두고 좋지 않은 모양새로 팀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새삼 ‘명성(名聲)의 위험’을 떠올리게 된다.
스포츠계의 속설 중에 ‘유명한 선수가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있다. 선수와 지도자는 별개의 영역이다. 선수는 자신의 성적에 주로 신경을 쓰지만 지도자는 팀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상황에 대한 세밀한 정보와 이들이 조합되어 나타날 수 있는 효과 및 그 장단점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선수들과의 다양한 심리적 밀고 당김과 긴장 관계 및 이로 인한 온갖 굴곡을 능란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와 관찰을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인간학’을 배워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선수가 지도자가 되려 할 경우 선수 시절 추앙받으며 만들어진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면 위와 같은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과 단련이 필요하다. 이를 생략하고 유명한 선수였다고 해서 곧바로 감독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유명 선수가 지도자가 될 경우의 위험은 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름값에 걸맞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 초조함에 시달려 무리한 운영을 하게 되고, 성적이 부진할수록 더 큰 비판에 시달리며 더 큰 상처를 받기 쉽다. 이 때문에 조기 퇴진하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는 물러날 때까지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해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며 주변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빚어낸 부작용들은 그 이름값에 비례해 더 크고 위험한 칼날로 돌아올 수 있다. 스포츠인 중에 유명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친 인물 중 한 명이 축구 스타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를 통해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중국 속담에 빗대어 아들에게 무조건 겸손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인파출명저파비(人怕出名猪怕肥)’라는 이 구절은 돼지가 살찔수록 도살될 위험이 커지듯 명성이 높아질수록 위험해지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명성의 부작용으로는 스스로의 오만, 방심, 태만 및 주변에 대한 배려 없음 등에 더해 다른 이들의 시기 질투까지 겹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이종범 이승엽 모두 범죄를 저지르듯 잘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워낙 유명한 인물들이었기에 그들의 행동과 결과가 더 크게 주목받고 그 부작용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전설들의 아름답지 못한 퇴장은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이 현역 시절 보여주었던 화려함들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과 추억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도자로서도 성공하길 기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에 겪은 많은 논란과 아픔을 통해 거듭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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