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우리가 알던 호랑이가 돌아왔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날카로운 이빨은 1년 사이 빠지거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튼튼한 잇몸으로 다시 먹잇감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른바 ‘잇몸야구’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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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타이거즈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오선우. 사진=연합뉴스 |
‘디펜딩 챔피언’ KIA타이거즈는 지난 2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5 KBO리그 원정경기에서 2위 LG트윈스를 12-2로 이기고 주말 3연전을 2승 1패 위닝시리즈로 마감했다. 순위는 여전히 4위지만 1위 한화이글스에 겨우 3.5경기 차다.
KIA의 지난 6월 한 달은 뜨거웠고, 극적이었다. 24경기에서 15승 2무 7패를 기록했다. 월간 승률이 무려 0.682에 이르렀다. 10개 구단 가운데 단연 1위다. 월간승률 2위인 한화의 승률은 0.550(11승 9패). KIA가 얼마나 압도적인 6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승리의 과정이다. KIA는 시즌 초반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타선 핵심인 김도영(햄스트링), 나성범(종아리 근육), 김선빈(햄스트링)이 모두 빠졌다. 내야 백업 자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던 윤도현(손가락 골절)도 전력에서 이탈했다.
마운드에선 좌완 불펜 곽도규(팔꿈치 수술)가 일찌감치 시즌 아웃됐고 우완 선발 황동하(교통사고)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좌완 이의리는 복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5월까지만 해도 KIA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순위는 7위에 머물렀다. 한때 꼴찌 추락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6월 들어 대반전이 일어났다. 샘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이라는 뜻의 ‘원두활수(源頭活水)’라는 사자성어처럼 기회에 목말랐던 새로운 선수들이 빈 자리를 훌륭히 메웠다.
공격에선 오선우, 김호령, 김규성, 고종욱, 김석환, 박민, 홍종표 등 골수 팬들이 아니고선 이름이 생소한 ‘잇몸’들이 공수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투수진에선 2024 신인드래프트 10라운드에 뽑힌 ‘경력신인’ 성영탁이 지친 불펜에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진짜 신인’ 이호민도 불펜진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KIA 팬들은 주로 2군 경기에 나섰던 선수들이 1군 라인업을 메우자 ‘함평 타이거즈’라는 씁쓸한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함평은 KIA의 2군 연습장이 있는 곳이다. 함평에서 긴 시간 구슬 땀을 흘렸던 사나이들이 지금은 챔피언스필드의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대체 자원의 성장은 팀의 건강한 발전으로 연결된다. 선수단 뎁스는 한층 두터워졌다. 기존 주전들이 돌아와도 선발 출전을 장담할 수 없다. 팀 내 건전한 경쟁구도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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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타이거즈 불펜진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는 우완 성영탁. 사진=연합뉴스 |
백업 자원과 2군 선수들이 힘을 내는 중심에는 팀의 기둥이자 맏형인 최형우의 역할이 크다. 1983년생으로 KBO리그 최고령 타자인 최형우는 주전 선수들이 이탈하는 상황에서도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거의 전 경기에 출전하면서 타율 0.333 14홈런 53타점을 기록 중이다. 타율과 최다안타는 전체 3위, 타점은 5위, 홈런은 공동 7위에 자리해있다. 단순히 노장투혼을 넘어 정규리그 MVP 후보로 손색없는 활약이다.
최형우는 젊은 후배들의 승부욕을 깨우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부상 핑계대지 말자. 너희들에게 기회가 왔다”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아라. 주전들이 돌아와도 너희가 밀리지 않으면 된다”고 힘을 불어넣고 있다.
시즌 초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던 이범호 감독의 표정도 점점 펴지고 있다. 그는 “팀 전체가 6월 MVP다. 코칭스태프, 프런트 모두가 합심한 결과다”며 “특히 경기에 나서고 있는 선수들을 잘 관리하고 있는 트레이닝 파트에 고맙다”고 말했다.
KIA는 오는 7월 1~3일 광주 SSG전, 4~6일 광주 롯데전, 8~10일 대전 한화전을 소화한 뒤 전반기 일정을 마무리한다. 남은 전반기 9경기 모두 중요하다. 특히 치열한 중위권 싸움을 벌이는 SSG, 롯데와 맞대결이 최대 승부처다.
이 감독은 “올해는 자꾸 빈틈만 보였는데 지금은 빈틈이 보여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며 “(부상 선수들이 돌아오는)7월에는 더 나을 것 같지만 더 힘든 한 달을 보낼 수도 있다. 긴장을 풀지 않고 6월처럼 한 단계씩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