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귀한 걸 몽땅 내다 팔다니…한국 '심각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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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에 자리한 LS엠앤엠 온산제련소 1공장에서 폐동 스크랩을 녹여 구리를 추출하고 있다.  LS엠앤엠 제공

울산시에 자리한 LS엠앤엠 온산제련소 1공장에서 폐동 스크랩을 녹여 구리를 추출하고 있다. LS엠앤엠 제공

국내 기업이 ‘재(再)자원화’ 기술로 폐기물에서 핵심 광물을 뽑아내고 있지만, 정작 회수한 핵심 광물의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廢)촉매, 폐인쇄회로기판(PCB) 등 원료를 수입할 때 붙는 관세를 환급받기 위해 기업들이 국내 판매보다 수출을 택하고 있어서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공급망 안보를 위해 재자원화 원료에 사실상 관세를 매기지 않는데 한국만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재자원화 기업 희성피엠텍은 국외에서 들여온 폐촉매에서 백금족을 추출해 국내 백금족 수요량의 35% 이상을 생산하지만, 이 중 약 73%를 다시 수출하고 있다. 원재료인 폐촉매를 수입할 때 납부한 3% 관세 비용을 환급받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들여올 경우 관세가 면제될 수도 있지만 폐기물 특성상 원산지 증빙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관세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백금족 금속에는 백금과 팔라듐, 로듐 등이 있다. 자동차산업의 필수 원재료지만 수입 의존도가 지난해 기준으로 92.6%에 달한다. 기껏 재자원화를 통해 회수한 백금족마저 해외로 다시 빠져나가면서 국내 자동차업계는 수입에 더욱 의존해야 하는 악순환에 놓였다. 희성피엠텍이 해외로 되파는 물량 전체를 국내 공급으로 돌리면 백금족의 수입 의존도는 60% 초반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석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이 희토류 등 자원을 무기화하는 상황에서 미국, 일본, EU 등 주요국은 공급망 안정과 친환경을 위해 재자원화를 국가 전략으로 삼고 제도적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며 “한국도 재자원화 원료에 관세를 매기지 않거나 할당관세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中 걸핏하면 수출 통제하는데…韓 뽑아낸 핵심광물도 못 지켜
국내 폐기물 재활용 시스템 미비…"폐금속류 특별관세 적용해야"

중희토류의 일종인 디스프로슘은 삼성전기 등이 생산하는 적층세라믹콘텐서(MLCC)의 필수 원재료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에서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중희토류를 수출 통제 품목에 올려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기업들도 희토 영구자석에서 디스프로슘을 추출하는 ‘재(再)자원화’ 기술을 갖췄지만 제도 미비로 양산하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자원화를 통해 국내에서 중희토류 같은 광물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원료 조달부터 난항

중국 등 자원 부국의 잇따른 자원 무기화로 재자원화가 주목받고 있다. 재자원화는 각종 폐기물에 함유된 금속광물을 추출해 다시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도시에서 광물을 캔다는 의미로 천연광산과 대비해 ‘도시광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재자원화 업계 관계자들은 22일 “‘천연자원 빈국’인 한국은 도시광산을 육성하는 데도 주요국에 뒤처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관련 업체들은 도시광산 산업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원료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자원화 원료란 폐촉매, 폐인쇄회로기판(PCB), 리튬이온 배터리를 분쇄해 얻은 중간가공품을 말한다. 폐배터리에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 폐PCB에는 구리 금 은 등이 함유돼 있다. 폐촉매에서는 백금족을, 폐영구자석에서는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폐기물 수거·분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 규모가 작고, 그마저도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광산 기업 대부분은 원료의 7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폐촉매에서 백금족을 생산하는 기업인 희성피엠텍은 폐촉매의 국내 조달 비중이 25%에 불과하다.

원료를 수입해 와도 문제다. 한국은 주요 경쟁국과 달리 폐금속류에 통상 3% 관세를 매기고 있어 원가 경쟁력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재자원화 기업 에스쓰리알의 서종현 대표는 “사업 시작 단계부터 다른 나라 재자원화 기업들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국내 재자원화 기업 211곳 중 80%가 종업원 20인 미만 소규모 업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자원화 사업은 영업이익률이 낮아 관세 부과 여부가 생산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했다.

◇ “자원빈국 韓, 도시광산 지켜내야”

결국 기업들은 관세를 돌려받기 위해 기껏 뽑아낸 핵심광물을 다시 수출하고 있다. 희성피엠텍은 백금족 재수출로 연간 약 300억원의 관세를 환급받고 있다. 희성피엠텍 관계자는 “수출 후 환급을 신청하면 약 6개월이 소요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금이 6개월간 묶이는 등 각종 금융비용이 발생한다”며 “관세가 없다면 설비 투자, 신기술 도입 등으로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가격만 맞으면 희성피엠텍이 국내에서 생산한 백금족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도 폐금속류에 할당관세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요한 만큼 싸게 들여올 수 있도록 특별 관세를 적용하자는 의미다. 광해광업공단 관계자는 “몇몇 핵심광물은 특정 국가 의존도가 90% 이상에 달해 공급국을 다변화하고 있는데, 국내 도시광산이 활성화하면 수입 의존도 자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시광산은 천연광산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자원 회수가 가능하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천연 리튬 광석 1t에서 1.4㎏의 리튬을 추출할 때, 폐배터리는 t당 최대 70㎏의 리튬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자원화는 친환경 산업으로도 꼽힌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도시광산은 버려진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천연광산 채굴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80%가량 감축할 수 있다.

김리안 기자

핵심광물 재자원화
폐배터리, 폐인쇄회로기판(PCB), 폐촉매 등에서 유용한 금속을 추출·정제해 산업 원료로 재투입하는 과정으로, 국내 자원 확보의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천연광산과 대비해 ‘도시광산’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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