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법의 원칙[이은화의 미술시간]〈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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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3년 로마의 원로원 회의장. 하얀 토가를 걸친 집정관 키케로가 비장한 연설을 토해내고 있다. 두 팔을 벌려 한탄하는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화면 오른쪽 구석, 텅 빈 의자들 사이에 홀로 앉은 카틸리나다. 주변 의원들이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 자리를 옮긴 탓에 그의 주변에만 서늘한 고립감이 맴돈다.

이탈리아 화가 체사레 마카리가 1888년에 그린 ‘카틸리나를 탄핵하는 키케로’(사진) 속 장면이다. 집정관 선거에서 거듭 낙선한 귀족 카틸리나는 공화정 전복을 꾀하며 쿠데타를 모의했다. 제보와 조사를 통해 이를 파악한 키케로는 원로원을 긴급 소집했고, “카틸리나여,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의 인내를 악용할 것인가?”라며 그의 음모를 폭로했다. 궁지에 몰린 카틸리나는 결국 로마를 탈출했고, 이듬해 반란군과 함께 전사했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법치주의가 반역을 이겨낸 순간으로 기억됐다. 그러나 그 승리는 또 다른 논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위기를 넘긴 키케로는 로마에 남은 쿠데타 공모자들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이 결단은 공화국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칭송과, 정당한 절차를 훼손한 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결국 그는 수년 뒤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마카리의 그림은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주는 역사화가 아니다. 국가의 위기 앞에서 공동체의 안전과 적법 절차 중 무엇이 우선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오늘의 세상도 2000년 전 로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위기 앞에서 효율과 안전을 이유로 법의 절차를 유예하려는 유혹을 종종 마주한다. 그러나 공화국은 영웅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도 법의 원칙을 지키려는 사회적 합의로 유지된다. 카틸리나 주변의 빈자리를 보며 다시 묻게 된다. 위기의 순간에도 법의 원칙은 끝까지 지켜져야 하는가.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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