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 원전 산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힌 가운데, 한국원자력학회가 호소문을 통해 우려를 공식 표명했다. 학회는 이 대통령에게 원전에 대한 부정적 입장 재고, 계획된 신규 원전 건설의 추진, 대통령실과의 공식적인 대화 채널 개설 등을 요청했다.
원자력학회는 12일 회원 일동 명의로 발표한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에서 “어제 이재명 대통령께서 밝히신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어 전문학술단체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 글을 올린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원전 짓는 데 최하 15년”이라며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해 “안전성(이 확보되고) 부지가 있으면 (건설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백지화를 시사했다.
관련해 원자력학회는 “국가 미래를 위한 절박한 심정”이라며 3가지를 호소했다. 우선 학회는 “대통령께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동력인 안정적 전력 공급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원전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재고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학회는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위해 기존에 계획된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또한 학회는 “대한민국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 집단인 우리 학회에 대통령실과의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열어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며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한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올바른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원자력학회의 호소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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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한국원자력학회는 어제(9.11) 이재명 대통령께서 밝히신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어 전문학술단체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에는 우리 학회도 뜻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국가 핵심 동력인 첨단 산업의 기반이 될 기저 전원으로서 원자력을 배제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그 길을 가겠다는 구상은,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 전반을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빠뜨리고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국가 경쟁력의 탑을 흔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첫째,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늘리느냐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 현실은 태양광, 풍력 등 핵심 설비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립에 기반하지 않은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막대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결과를 낳을 뿐, 국내 산업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는 기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격 경쟁력에 밀린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고사하는, 생태계 붕괴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시작한 정책이 설비와 기술의 해외 종속이라는 또 다른 안보 문제를 야기하는 모순을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AI 시대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는 안정적인 공급이 핵심이며, 원자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는 단순히 원자력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반도체와 AI, 미래차 등 첨단 산업의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들 산업은 저렴하고 안정적인 고품질의 전기가 24시간 공급될 때만 비로소 꽃피울 수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공장은 멈추고,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멎게 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AI 시대의 패권을 잡기 위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조화를 모색하며 안정적인 전력망 구축에 사활을 거는 지금, 우리의 선택은 국가의 명운을 가를 것입니다. 지금 당장 목마르다고 염분이 가득한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듯, 불안정한 에너지원에 국가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우리 산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셋째, 장기적인 안목의 에너지 계획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대통령께서 원전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하신 점은 역설적으로 왜 우리가 지금 당장 원전 건설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10년 후의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에너지원을 건설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의 기본 책무입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앞의 어려움 때문에 미래를 위한 약속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망설임은 10년 후 대한민국에 돌이킬 수 없는 전력 대란과 산업 경쟁력 상실이라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에 우리 학회는 국가 미래를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하나, 대통령께서는 AI 시대의 동력인 안정적 전력 공급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원전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위해 기존에 계획된 신규 원전 건설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셋, 대한민국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 집단인 우리 학회에 대통령실과의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열어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국가 에너지 정책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한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올바른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이념과 정치적 논리가 아닌, 오직 과학적 사실과 국익에 기반하여 수립되어야 합니다. 부디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 산업과 국민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결단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5년 9월12일 한국원자력학회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