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표류한 합성니코틴 규제
청소년 흡연 지형, 액상 전자담배 중심으로 이동
마약 유통 통로로 활용되는 전자담배
유사 물질 등장하며 규제의 빈틈 확대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뱃잎을 원료로 한 제품만 담배로 규정하기 때문에,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고 표시, 광고 제한, 세금 부과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 이로 인해 합성니코틴 제품은 무인 매장이나 온라인에서 청소년에게 쉽게 노출되고 있다.
특히 합성니코틴은 화학적 구조를 변형(분자 구조 일부를 바꿔 유효 성분의 효과는 유지하면서 법적 규제를 회피하는 방식)해 유사니코틴, 무 니코틴 등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며 규제보다 앞서가고 있다. 이는 합성 마약류가 규제의 빈틈을 노려 급속히 확산한 과거 패턴과 흡사하다.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는 이미 불법 마약 유통 통로로 적발된 바 있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액상 전자담배에 신종 마약 ‘에토미데이트’를 주입해 매달 2만 개를 밀반입하려던 범죄단체를 적발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액상 전자담배에서 마약이 검출된 건수는 2022년 924건에서 2023년 205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이는 단순히 청소년 건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자담배라는 탈을 쓴 새로운 마약 유통 경로가 얼마나 빠르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의 빈틈으로 합성니코틴 전자담배가 합법적 포장지를 쓰고 마약류 시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은 액상 전자담배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특히 여학생의 경우 액상 담배 사용률이 궐련(일반 담배)을 넘어섰다. 액상 담배는 냄새가 거의 없고 디자인이 일반 담배와 달라 은닉이 쉽다. 신분증 확인 절차가 허술한 무인점포·온라인 판매 환경은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 상황에서 일부 사건에선 미성년자가 액상 전자담배를 통해 직접 마약 흡연자이자 유통책으로 가담하는 사례까지 적발됐다. 이는 단순한 흡연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을 ‘마약 시장의 소비자이자 공급자’로 끌어들이는 사회 안전 위협이다.합성니코틴 규제법은 2016년 첫발의 이후, 2024~25년 연구용역·공청회·소위 상정 등 절차를 거쳤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그 배경에는 일부 의원들의 연구 신뢰성 문제 제기, 업계의 생존권 주장, 여야 간 정쟁이 결합했다. 그 결과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망은 10년 가까이 방치됐다. 전문가들은 “합성니코틴은 단순한 흡연 자재가 아니라 규제받지 않는 새로운 마약 플랫폼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국회의 즉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합성니코틴 규제는 담배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 보호, 조세 형평, 소매상 역차별 해소, 나아가 마약 범죄 차단이 동시에 걸려 있는 문제다. 규제가 늦어질수록 합성니코틴은 새로운 형태의 ‘합법적 마약 대체물’로 자리 잡을 위험이 크다.
정치권이 정쟁을 접고 합성니코틴을 비롯한 유사니코틴·무 니코틴까지 포괄할 수 있는 단일 규제 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현재 세대를 넘어 미래 세대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상준 기자 k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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