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창동역 1번출구로 나와 잠시 걷자 아파트촌 사이로 색다른 모양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과 햇빛에 따라 회색과 검은색으로 색을 바꾸는 외관, 그 아래 암실의 암막 커튼을 살짝 들어올린 듯 나와있는 독특한 출입구. 그 속으로 들어가니 높이 10m에 달하는 로비와 회색 콘크리트, 흰 벽, 검정 마감재가 조화를 이룬 전시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반면 가구와 집기는 빛의 3원색인 빨강·녹색·파랑으로 구성돼 시선을 확 잡아끈다.
28일 찾은 창동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사진을 상징하는 세련된 건축 디자인이 돋보였다.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공립 미술관’다운 모습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이 미술관은 오는 29일 정식 개관한다. 2015년 건립 준비를 시작한지 10년만이다. 연면적 7048㎡(2132평)에 달하는 너비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사진 전시·수장에 특화된 설계.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장은 “사진 특화 미술관으로서 한국 사진 작품과 자료를 보존하고 사진문화의 미래를 이끌겠다”고 했다.
미술관은 지난 10년간 개관을 준비하며 20세기 한국 사진 걸작과 자료 등 총 2만여점을 수집해왔다. 개관을 맞아 열리는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이렇게 수집한 작품 중 한국 사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가들의 주요작을 소개하는 전시다. 1929년 한국인 최초로 개인 사진전을 열었던 정해창(1907~1967)의 대표작 ‘여인’(1929년작 추정)이 전시의 막을 연다.
이후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이형록(1917~2011)의 작품이 이어진다. 1950년대 찍은 어린 아이들의 사진을 특히 주목할 만하다. 임석제(1918~1996)가 찍은 농부와 산업 역군들의 리얼리즘 사진도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을 네 번 연속 수상한 한국 모더니즘 추상 사진의 선구자 조현두(1918~2009)의 작품은 강렬하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말에 다시금 공감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여성주의 사진의 대가 박영숙(84)의 작품이 대미를 장식한다.
미술관 개관은 인구 수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다소 부족했던 서울 북부 주민들에게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미술관에서는 사진 제작 과정과 관련 이론 등을 가르치는 ‘포토 세마 아카데미’를 비롯해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지역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 전문 도서관인 ‘포토 라이브러리’에는 사진집, 도록, 사진에 관한 인문 서적 등 5000여권의 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개관전은 10월 12일까지 열린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