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33일 간의 국정 공백’이 그렇게 가벼운가

1 day ago 5

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이런 상황에선 북한이 진짜 쳐들어올 수도 있겠다.’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안 강행에 직면한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1일 밤 사퇴 속보를 접한 순간 한 고위 외교당국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한반도 정세를 지켜보며 남북관계를 다뤄온 전문가를 긴장시킬 만큼 정치권의 혼란 속 리더십 구멍이 그만큼 크게 보였다는 의미다.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물자와 인력을 쏟아부은 탓에 남침 여력도 의지도 현재로서는 없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지만, 평양의 오판 가능성은 상존한다.

국정 빈틈 우려되는 ‘대대대행’ 체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의 대행이 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북한이 어떠한 도발 책동도 획책할 수 없도록 빈틈없는 대비 자세를 유지하기 바란다”는 메시지에는 원고를 읽는 수준을 넘어서는 힘이 없었다. 1년 넘게 의대생 증원 문제의 대응에 급급했던 그다. 그런 이 부총리 개인의 결기나 의욕만으로는 메우기가 쉽지 않은 사상 초유의 국정 공백이자 안보 사령탑 부재 상황이다.

글로벌 통상 분야는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 이미 소리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의 5개 우선 협상국으로 지목된 한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는 중이다. 그런 협상팀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매국’ 딱지를 붙여 공격하던 민주당은 아예 협상 선봉에 서 있던 최 전 부총리마저 끌어내렸다.

관세 협상은 어차피 6·3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마무리할 일이니 미국 측에 국내 정치적 변수들을 핑계 삼아 버티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측이 정신없는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을 감안해줄 것이란 전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90일간의 관세 유예 기간 내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상황을 되레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속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되지만, 대선 후 새 정부가 제대로 협상할 수 있도록 탄탄한 사전 준비 작업을 해놓을 필요가 있다. 이는 정확한 방향성과 지침 없이 실무자들끼리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안보·경제 후과에 민주당도 책임져야

일본의 경우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협상 과정을 일일이 보고받고 취재진에게 직접 설명도 한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J D 밴스 미국 부통령에게 “상대하기 힘든 협상가(tough negotiator)”라는 평가를 들어가며 대미 관세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 협상을 시작한 이들 나라는 관세를 대폭 면제받는데 우리만 시한을 넘긴 채 25%가 유지되는 최악의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2, 3주 안에 그냥 가격을 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국내 정치 갈등이 아무리 극심하더라도 그것은 안에서 치고받고 싸울 일이다. 대외적으로 국가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경제와 안보라는 국가의 두 핵심축을 흔드는 수준까지 치닫는 것은 선을 넘는 자해다. 민주당의 이번 탄핵은 경제 수장인 최 전 부총리를 통해 그나마 간신히 붙잡고 있던 주요 현안 대응의 끈을 사실상 끊어버렸다는 점에서 질이 나쁘다. 국익보다 당의 이익을 앞세워 폭주한 무책임함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기 대선 승리를 점치는 민주당은 남은 한 달여 동안 서열 4위의 대대대행 체제로 적당히 버티고 뭉개면 된다는 심산일지 모르겠다. 33일이라는 국가의 시간이 그렇게 가벼운가. 이 기간의 정부 결정과 대응은 향후 3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후과를 남길지 모른다. 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민주당도 함께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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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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