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 폐업 위기 넘은 센트비 11년…최성욱 대표의 생존 철학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춤과 노래에 빠져 살던 청년은 결국 창업가가 됐다. 해외송금 핀테크 기업 센트비를 창업한 최성욱 대표 이야기다.
2015년 설립된 센트비는 현재 누적 송금액 약 14조원을 기록한 글로벌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센트비가 있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창업 초기 금융당국의 고발로 검찰 조사까지 받았고, 규제로 인해 한 달 뒤면 회사를 접어야 하는 폐업 위기를 겪기도 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센트비 사옥에서 만난 최 대표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첫인상은 핀테크 기업 대표보다 예술가를 떠올리게 했다. 농담을 섞어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창업 초기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말을 고르며 당시를 떠올렸다.“힘든 일은 계속 생기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해결하자는 마음입니다. 말하는 대로 정말 되는 것 같아요.”
● “돈보다 중요한 건 재미였다”
최 대표는 스스로를 “항상 새로운 경험을 원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길을 반복하는 삶보다 다양한 역할과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때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춤과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배우는 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여러 역할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 전공보다 춤에 더 몰두했다. 학부 3학년 2학기에서야 처음 전공 수업을 들었을 정도다. 대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과외는 물론 웹사이트 번역, 게임 버그 테스트, 불법 다운로드 단속 아르바이트까지 섭렵했다.
여러 회사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 경험은 결국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에게 창업은 거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 궁금한 것은 직접 해보려는 성향의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알바를 하면서도, 회사를 다니면서도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할 것 같았습니다. 연봉을 1000만원을 받든, 1억원을 받든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정부 믿고 시작했는데 고발당했다”
센트비는 정부가 해외송금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관련 법 개정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센트비는 비트코인을 활용한 해외송금 서비스를 먼저 시도했고, 2016년 말 금융당국이 불법 서비스라며 문제를 제기해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최 대표는 “당국에 문의하며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했는데 고발을 당했다”며 “사업을 하면서 규제가 회사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검찰은 당시 관계 법령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입건을 유예했다.
더 큰 위기는 2018년에 찾아왔다. 2017년 해외송금 라이선스를 취득한 뒤 금융회사로 분류되면서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가 사실상 막혔다. 회사에는 현금이 바닥났고 구조조정까지 고민해야 했다.
“2018년 11월 23일이 기억납니다. 회사에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어요. 규제 때문에 정말 회사를 닫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그는 지금도 틈틈이 일기를 쓴다. 당시 적어둔 메모에는 ‘잊지 말자.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문장이 남아 있다.
● “지금의 고통은 처음이라 힘든 것뿐”
폐업 위기 속에서 최 대표를 버티게 한 것은 공동창업자와 팀원들, 그리고 투자자들이었다.
특히 한 투자자의 조언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주주 한 분이 ‘지금 네가 겪는 고통은 처음이라 힘든 것뿐이다. 앞으로 더 큰 회사가 되면 지금보다 20만배 더 힘든 일들이 올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공동창업자들과 10년 넘게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실수도 하고 잘못된 결정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함께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서로 사람 자체를 믿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부산까지 찾아온 필리핀 노동자…“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구나”
최 대표가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수익성만은 아니다. 그는 창업 초기 직접 만난 한 필리핀 노동자의 이야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2016년 부산 필리핀 영사관에서 홍보 활동을 하던 당시 울산에서 일하던 한 필리핀 근로자가 일부러 부산까지 찾아와 두 손을 꼭 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센트비를 이용한 뒤 필리핀에 있는 아내가 더 이상 배를 타고 도시까지 나와 송금액을 찾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아내가 섬에 살고 있었는데 은행을 통해 송금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도시까지 나와 현금을 찾아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센트비를 이용한 뒤에는 집 근처에서 바로 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단순히 송금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 “AI 시대엔 문제를 푸는 사람보다 질문하는 사람이 중요”
최 대표는 최근 스테이블코인 기반 해외송금·결제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니라 “해외송금과 결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특히 AI 시대에는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문제를 푸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넓게 보는 경험과 맥락이 필요합니다.”
최 대표는 젊은 세대에게 무엇보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똑똑한 친구들일수록 너무 많이 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택 하나가 인생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무 계산만 하지 말고 일단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막힘없이 답하던 그는 마지막 질문에서만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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