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
평면·사진·영상·설치 총망라
다중 연구 연작 ‘표제록’ 펼쳐
어딘가 낯선 아홉 사람의 흔적이 지도 위에 펼쳐져 있다. 도산 안창호(1878~1838)와 그의 아내 이혜련(1884~1969), 큰 아들 안필립(1905~1978). 1950년부터 미국 하와이에서 조선의 전통 춤을 가르쳤던 배한라(1922~1994)와 제자 메리 조 프레실리. 하와이의 역사가 조안 랜더와 푸히파우(1937~2016). 서로 이질적인 것 같지만 모두 하와이 한인 이민자이거나 그의 자손, 또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다. 김성환 작가는 설치 작품 ‘몸 컴플렉스’(2024)를 통해 이 사람들을 역사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전시장에 등장시켰다.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를 생경하게 마주하게 함으로써 앎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것이다.
미국 하와이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김성환 작가(49)의 개인전이 내년 3월 30일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김 작가의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작가가 2017년부터 천착해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을 중심으로 평면과 사진, 디자인,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펼친다.
전시 제목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하와이어와 한국어 표음을 병치한 것이다. ‘그가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이란 뜻이다. 이는 작품의 주된 배경이 된 하와이와 서로 다른 두 문화를 상호 비유하는 작가의 접근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 작가는 20세기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앎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표해록’ 연작은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의 다양한 서사를 조각 조각 펼치면서 세대와 젠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서로를 잇는 지식에 대해 탐구한다. 이는 하와이와 한국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한인 이민자와 그 자손들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하와이인 대부분은 소수 민족인데 그들 안에 한국인들이 많이 섞여 있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이들도 많다”며 “하지만 한국 역사가들은 순수한 한국인들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그 엇갈린 시선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특히 ‘표해록’의 신작 비디오 설치 작품 ‘무제’(2024)는 미완결의 현재 진행형으로 공개된다. 김 작가는 내년 2월 중순부터 3월까지 전시장에 상주하며 워크숍 등을 진행하며 작품을 완성할 예정이다. 작가의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제2 전시실에서 관객은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행위자가 된다. 이 역시 김 작가가 의도한 ‘앎에 대한 고찰’의 일부다. 그는 “전시는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건축과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해 사회적 구조와 그 안에 내재된 역사, 기억, 심리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영국 테이트 모던 ‘더 탱크스’ 개관전(2012년)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개인전(2021년), 네덜란드 반아베미술관(2023년)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김 작가의 ‘표해록’ 연작은 지난 2021년 광주 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대중에 소개됐고, 이듬해 하와이 트리엔날레와 부산 비엔날레 등에서 확장을 거듭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해온 동시대 한국미술 대표작가 연례전의 일환이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작가의 첫 미술관 대규모 개인전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다양한 힘이 교차했던 20세기 역사를 다시 검토하는 일련의 작품들은 동시대 미술관이 지식 생산과 유통, 순환의 장소로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