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행’ 23년 운영 허기복 목사
강원 원주서 시작… 전국 31곳 열어
“사진찍기 좋아하던 정치인도 뜸해
섬마을까지 지원할 여력 모자랄 듯”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연탄 후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습니다.”20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밥상공동체·연탄은행’ 사무실에서 만난 허기복 목사(68)는 “23년 동안 연탄은행을 운영하면서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연탄 나누기 운동을 시작한 그는 2002년 강원 원주에 연탄은행 1호점을 세우며 본격적인 연탄 나눔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전국 31곳으로 늘었다.
허 목사는 “매년 어렵다, 어렵다 해도 그래도 평균 450만 장 정도를 기부받았는데 올해는 지난해 12월 말까지 300만 장도 안 된다”고 했다. 12월 한 달만 쳐도 2023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68%가 줄었다고 한다.
“보통 연말연시에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훈훈한 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이 소개되잖아요. 정기적으로 하는 분들이 아니면 대부분은 크든 작든 그런 사연을 접하고 후원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두 달 가까이 언론은 물론이고 인터넷, 유튜브까지 온통 계엄 이야기뿐이고 기부 관련 뉴스는 거의 사라진 탓이 큰 것 같습니다.”그는 “형식적으로라도 와서 사진 찍고 후원하고 가던 정치인들도 정쟁 때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지 거의 안 온다. 정부 부처 기부도 많이 준 상태”라며 “경제 상황이 불안해서인지 기업 후원도 급감하고 자원봉사자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연탄 후원의 특성상 기부하며 배달 봉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부 자체가 주니 자원봉사자도 함께 줄었다고 한다. 허 목사는 “이런 상황 때문에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섬 지역에는 지원을 못 하고, 다른 곳도 평소 지원하던 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허 목사에 따르면 여전히 연탄 난방을 하는 집들은 전국에 약 7만4000가구가 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연탄 한 장 가격은 평균 900원. 허 목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거개선 사업으로 기름보일러를 설치해 주지만 기름값은 주지 않는다”며 “최저생계비와 폐지 수거 등으로 한 달 수입이 50만 원 정도인 사람들에게 한 달 기름값 50만 원 정도 드는 기름보일러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대신 연탄은 150∼200장(13만∼18만 원) 정도면 한 달을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기껏 기름보일러를 설치해 줘도 중고 연탄난로를 놓고 겨울을 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연탄보다 싼 도시가스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도시가스가 연탄보다 싼 건 맞지요. 그런데 배달차도 못 들어가 손으로 연탄을 날라야 하는 낙후된 곳에 도시가스 관이 설치돼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하지요.”
허 목사는 “흔히 연탄은 겨울에만 쓰는 줄 알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 많아 여름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게 난방을 해야 한다. 봄가을 역시 온수가 필요하다”며 “모두가 힘든 시기지만 새해에는 조금만 더 없는 사람,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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