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경원’ 규모의 글로벌 의료산업이 인공지능(AI)을 만나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AI 칩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 패권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자체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앞세워 글로벌 헬스케어 업체들과 제휴를 대폭 확대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업계의 초점이 AI를 의료산업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맞춰졌다면 올해는 임상시험과 신약 개발 등에 AI를 도입해 불치병 치료 등 인류의 난제를 AI에 맡기는 단계로 나아갔다.
○“AI로 의료 패러다임 전환”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산업 행사인 ‘2025 JP모간 헬스케어 콘퍼런스(JPMHC)’에서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 부문 부사장은 “AI는 의료를 비롯한 모든 산업에 걸쳐 완전한 ‘AI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속 컴퓨팅과 바이오 데이터로 무장한 AI는 헬스케어를 최대 기술 산업으로 바꾸고 있다”며 아이큐비아, 일루미나, 마요클리닉, 아크인스티튜트 등 4개 업체 및 기관과 대대적인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핵심은 엔비디아가 이 업체들에 하드웨어인 AI 가속기는 물론 소프트웨어인 AI 플랫폼까지 제공한다는 데 있다. AI 반도체 등 하드웨어에 머물지 않고 직접 AI 모델을 개발해 절대강자가 없는 의료 분야 AI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다. 엔비디아는 이날 자체 AI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BioNeMO)’에 단백질 디자인 툴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관련 데이터를 학습시킨 AI로 신약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걸 넘어 AI 에이전트(비서)가 다중 치료용 단백질을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생성형 AI가 단백질의 3차원(3D) 모델을 만들면 추론과 논증에 특화된 AI가 단백질 간 최적의 결합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파월 부사장은 “단백질 기반 치료제는 인슐린에서 항체에 이르기까지 안전한 치료법으로 의학을 혁신했지만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AI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말했다.
○엔비디아 “AI, 의료 노동력 부족 해결”
의료 분야 노동력 부족 문제도 AI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엔비디아의 구상이다. 글로벌 의료산업 규모를 약 10조달러(약 1경4700조원)로 추산한 파월 부사장은 “AI의 최종 단계인 ‘물리적(physical) AI’는 수술용 로봇 등 전 분야에서 이런 문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산업에 ‘챗GPT 모멘트’(챗GPT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순간)가 왔다”며 로봇이 AI를 지능으로 활용하는 물리적 AI를 내세웠다. 이런 물리적 AI가 수술용 로봇 등 의료산업에 적용되면 폭발적 파급력을 지닐 것이란 설명이다.
○제이미 다이먼 “AI는 현실”
헬스케어와 AI의 결합은 지난해 행사 때도 핵심 화두였지만 올해는 다소 달랐다. 작년엔 AI를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하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컸다면, 올해는 AI를 불치병 등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할 도구로 전면에 내세웠다. AI 기반 신약 개발사 템퍼스 관계자는 “오늘날 자동차업계에선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헬스케어업계에선 AI를 이해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AI로 100%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는 만큼 오늘날의 진단은 어쩌면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AI는 이미 바이오·의료산업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의료 분야 AI 시장 규모는 266억9000만달러(약 39조원)로 전년 192억7000만달러와 비교해 1년 새 38.5% 급증했다. 2034년에는 시장 규모가 23배 불어난 6138억1000만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은 바이오·의료산업에서 일어날 AI 혁명을 예고했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뽑아내는 것인데 우리는 20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해 거대한 ‘데이터 호수’를 구축했다”며 “이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한 AI를 의료 분야에 적용하면 암을 치료하고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샌프란시스코=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