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 에밀레, 에밀레… 맥놀이 신비 온몸으로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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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감각전시실… 성덕대왕신종 소리 완벽 체험
4m LED 화면서 종소리 감상… 모서리마다 4대 우퍼스피커
3초 간격 맥놀이 완벽하게 재연… 의자엔 진동기 달아 파동 느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최근 마련된 감각전시실 ‘공간_사이’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이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실제 재질 축소 모형을 만져보고 있다. 이번 전시실은 미디어아트와 진동 의자, 촉각 체험 등 다양한 감각 콘텐츠로 성덕대왕신종의 특별한 소리를 느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최근 마련된 감각전시실 ‘공간_사이’에서 외국인 관람객들이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실제 재질 축소 모형을 만져보고 있다. 이번 전시실은 미디어아트와 진동 의자, 촉각 체험 등 다양한 감각 콘텐츠로 성덕대왕신종의 특별한 소리를 느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장중하면서도 맑고 고아한 종소리가 전시실을 10분마다 가득 메웠다. 소리는 커졌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하면서 관자놀이 부근에서 일렁였다. 앉은 의자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온몸을 소리로 떨리게 했다. 시주로 바쳐진 아이가 엄마를 향해 ‘에밀레’ 우는 것처럼 들린다 하여 ‘에밀레종’으로도 불리는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타종 소리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의 가로세로 10m 크기 전시실. 2015년 이후 줄곧 휴게 공간이었던 이곳이 성덕대왕신종 ‘감각전시실’로 탈바꿈했다. 1일 전시실에서 만난 임진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성덕대왕신종은 은은하면서도 길고 깊은 소리를 내도록 설계된 우리나라 범종(梵鐘)의 수작”이라면서 “관람객이 다양한 감각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성덕대왕신종은 771년 완성된 통일신라의 범종이다. 구경이 약 323cm에 이른다.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이자 유일하게 소리가 온전히 보전된 대종(大鐘)으로 꼽힌다. 하지만 유물 보호를 이유로 1992년 이후로는 주기적 타종이 중지돼 그 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새로 만든 전시실은 국립경주박물관이 2020년부터 약 3년간 진행한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실제 타종 및 녹음한 종소리를 체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감각전시실은 성덕대왕신종이 내는 특별한 소리의 핵심인 ‘맥놀이(소리 강약이 반복되며 길게 이어지는 현상)’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성덕대왕신종은 고유 주파수인 64.18Hz와 64.52Hz가 서로 간섭하면서 소리가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한다. 종 내외부 구조가 미세하게 비대칭을 이루는 것 등이 그 원인이다.

전시를 감수한 조완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성덕대왕신종은 약 3초 간격으로 맥놀이 주기가 발생한다. 1초보다 짧으면 귀에 거슬리고, 10초 이상이면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대종이 있지만, 이렇게 균형감 높은 맥놀이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전시실은 모서리마다 저주파 소리가 강화된 스피커(우퍼) 각각 1대씩 4대를 배치됐다. K팝 기획사나 레이블에서 자주 사용되는 모델이다. 사운드 디자인을 맡은 곽동엽 씨는 “우퍼 한 대로도 충분한 공간이지만 소리가 중앙으로 모였다가 확산하는 느낌을 내고자 4대를 활용했다”며 “여러 대가 동시 재생되면 동일한 주파수의 소리끼리 부딪쳐 사라질 수 있기에 우퍼별로 2∼3ms씩 시간차를 두고 종소리를 재생한다”고 말했다.

전시실 내 의자에는 ‘셰이커’(소리의 압력을 전달하는 진동기)가 부착돼 있다. 피부로도 맥놀이를 느끼게끔 한 것. 셰이커는 통상 드럼 연주자의 의자나 전자음악 DJ의 발판에 사용되는 장치다. 곽 씨는 “우퍼를 여러 대 쌓아서 음량을 키우면 자연스럽게 진동이 전달되지만 다른 전시실의 유물에 지장을 준다는 문제가 고려됐다”고 했다. 의자에 앉으면 폭 4m, 높이 4m의 대형 LED 화면을 통해 종소리를 눈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소리 파형이 마치 회오리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는 형상을 표현한 미디어아트다. 실제 성덕대왕신종을 쳤을 때 발생하는 음향신호 정보를 토대로 제작됐다. 조 연구원은 “성덕대왕신종 주위로 마이크로폰 120개를 둘러싸고서 신호를 측정했다”며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종소리의 파동 형태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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