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마지막 무대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 적지않은 부상 이력을 생각하면 사실상 마지막이라 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LA다저스 좌완 클레이튼 커쇼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커쇼는 지난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트루이스트파크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에서 2회초 내셔널리그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 두 타자를 상대하고 내려갔다.
첫 타자 칼 롤리에게는 발사 속도 101.9마일의 강한 타구를 내줬으나 좌익수 카일 터커가 호수비로 잡아냈다. 이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등판을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난 그는 “터커가 멋진 플레이를 해줘서 좋았다. 두 타자밖에 상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아웃을 못잡았다면 모르겠지만, 잡을 수 있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2023년 이후 2년 만에 올스타였다. 지난 2년간 어깨와 발가락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특별한 공로가 있는 선수를 추가로 선발할 수 있는 ‘레전드 픽’ 규정으로 올스타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가족들이 올스타 게임에서 내가 던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다시 별들에 잔치에 초대받은 소감을 전했다.
자신의 자격에 대한 의심은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올스타에 초대받았을 때 내 생각은 ‘내가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뺏는 것은 싫은데’였다. 정당한 자격을 얻어 정당하게 참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뺏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 규정을 뭐라 부르든 상관없지만, 아무튼 약간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며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어쨌든 다 끝난 일이다. 가족들과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경기전 팀 미팅 시간에는 닥(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애칭)이 몇 마디 하게 해줬다. 솔직히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나쁜 말만 안했기를 바란다. 아무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냥 지나치고 싶지는 않았다”며 주어진 기회를 즐겼다고 말했다.
첫 올스타에 뽑힌 2011년 클리프 리, 로이 할라데이 등 기라성같은 선배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그다. “모든 선수들을 우러러보고 존경했다. 마치 벽에 붙은 파리마냥 옆에서 선배들이 뭐라 이야기하는지 귀담아 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됐다. “정말 시간이 빠르다”며 말을 이은 그는 “모두가 멋지고 재밌는 선수들”이라며 다른 팀 선수들과 교감에 관해 말했다.
내셔널리그 선발 투수로 나선 폴 스킨스(피츠버그)는 그 ‘재밌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마치 불독같이 경쟁심이 넘치는 친구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화를 해보면서 정말 규칙적인 루틴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됐고, 덩치가 생각보다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됐다. 특별히 말한 것은 없고 투구 그립 정도 이야기했지만, 그가 잘하고 싶고, 위대해지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며 인상을 전했다.
2011년 커쇼가 리나 할라데이를 바라봤던 것처럼, 2025년의 스킨스도 커쇼를 우러러봤을 터. 스킨스는 “어제는 얘기를 많이 못했고 오늘 많은 얘기를 나눴다. 정말 품격 있는, 인상적인 선수였다. 그가 해온 많은 업적뿐만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며 커쇼를 만난 인상을 전했다.
커쇼는 이번 올스타 출전으로 워렌 스판(17회) 마리아노 리베라(13회) 톰 시버(12회) 다음으로 많은 올스타에 출전한 투수가 됐다.
그는 “그냥 나이가 들었고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라며 이 기록에 대한 소감을 전하면서도 “온갖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첫 번째 올스타에서 기억한 특별함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거 같다. 이런 무대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전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멋진 일이다. 이번이 내 마지막 올스타일지도 모른다”며 올스타의 특별함에 대해 말했다.
커쇼는 또한 이 자리에서 메이저리그 올스타가 갖는 특별함, 그리고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었다.
“올스타 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동하는 것도 쉽지않고 가족들을 챙기는 과정에서 혼돈이 벌어지거나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의미 있고, 영향력 있는 일이며 야구계에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는 프로 스포츠 전체 올스타 중 가장 최고의 생산품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대회도 오타니 쇼헤이, 애런 저지 등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쇼케이스를 해줬다. 이것의 일원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애틀란타(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