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아크테릭스는 최근 중국 티베트 고원지대에서 불꽃놀이 이벤트를 했다가 글로벌시장에서 논란이 됐다. 유명 불꽃놀이 예술가인 차이궈창과 협업해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터진 색색의 불꽃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이도록 한 홍보용 초대규모 퍼포먼스였지만, 영상이 공개되자 이 불꽃놀이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그런데 정작 국내시장에서는 환경오염 논란보다는 다른 이슈가 더 부각됐다. 불꽃놀이 논란 이후 아크테릭스의 모기업인 중국 안타그룹의 주가가 5% 가까이 폭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아크테릭스가 캐나다 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이 소유한 브랜드였어?”라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그간 국내 소비자들이 아크테릭스의 모회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에는 브랜드 측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주로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고가 브랜드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마케팅 흐름인데, 모회사는 중국 기업일지라도 ‘캐나다에서 태어난 브랜드’, ‘스웨덴에 뿌리를 둔 디자인’ 등의 내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식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국산=저가’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데다가 반중(反中) 정서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의식해서다.
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199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창립된 고급 아웃도어 브랜드인 아크테릭스는 모기업인 핀란드 아머스포츠가 2019년 중국 대표 스포츠 브랜드 안타그룹에 46억유로(약 7조6000억원)에 인수됐다.
중국 시장에선 룰루레몬, 살로몬과 함께 중산층이 애호하는 3대 아웃도어 브랜드로 꼽힌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21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경기장 건설 현장 방문 때 입어 유명세를 탔다. 국내에서는 일부 아웃도어를 즐기는 마니아층이 주로 찾던 브랜드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입은 이후 젊은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선호하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공식 마케팅 문구로 ‘캐나다 알파인 정신’, ‘밴쿠버 장인정신’ 등의 문구를 주로 사용할 정도로 캐나다 태생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사실 중국 기업 소유인 것이다. 프랑스 살로몬, 스웨덴 피크 퍼포먼스, 미국 윌슨, 일본 데상트도 비슷하다. 이들 브랜드도 안타그룹에 인수된 지 꽤 됐다.
MZ 세대에서 인기가 많은 이 브랜드들이 중국 기업 소유라는 것은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중국 소비자에게도 낯선 사실이다. 한국 스포츠 패션기업 휠라와 코오롱스포츠의 중국 사업 운영권도 안타스포츠가 갖고 있다. 최근 국내시장에 재론칭한 케이스위스도 마찬가지다. 미국 캘리포니아 브랜드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내세워 마케팅했지만 사실상 2019년부터 중국 엑스텝인터내셜홀딩스에 인수돼 중국 소유 기업이다.
명품 브랜드도 있다. 여성복과 화장품 등을 주로 파는 프랑스 명품 랑방은 중국의 푸싱그룹 소유다. 자동차 업계에서 유명한 사례는 중국 지리자동차에 인수된 스웨덴 볼보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는 볼보는 대부분 국내 광고에서 ‘스웨덴 안전 기술’이나 ‘스웨디시 럭셔리 감성’ 등을 크게 내세우며, 지리자동차와의 관계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같은 중국 기업 소유인 스웨덴 폴스타, 영국의 로터스 등도 비슷하게 중국 관련 이슈를 최대한 노출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특히 서구권 브랜드들이 중국 자본 산하에 있다는 점을 숨기고 철저히 본국 정체성을 강조하는 데는 이 방식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더 낫다고 인식한 것이다. 아직까지 일반 소비자들에게 북미·유럽산이 고가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국산이 값싸고 품질이 낮다는 고정관념도 존재하므로 이를 회피하고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중국 지우기’ 전략이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여러 정치적·지정학적 리스트에 따른 중국 비선호 경향을 의식한 조치이기도 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유명 글로벌 브랜드를 사들이는 추세가 확대하고 있어 비슷한 상황의 브랜드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라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반중 정서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라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중국 지우기 마케팅이 거의 생존 전략”이라고 짚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